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그 소설들을 지나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걷다가 문을 연 뒤 다른 세계로 갔고 등 뒤에서 닫히는 문을 보며 한 시절이 떠나갔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어떤 겹이 생겨나는 걸 느꼈다.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인간의 성장은 날개를 펴는 것처럼 자유로워지거나 꽃이 피듯 눈부신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일을 통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 일인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키가 자라는 것처럼 어떤 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 P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