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어른 - 허난설헌, 단종, 영친왕까지 역사가 증명한 인물들의 삶과 가르침
홍순지 지음 / 드루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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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의 한 토막들을 뭉쳐서 저에게 여러 생각과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 책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에 남고 더 알고 싶은 분들이 계시지만, 강우규 선생님이 저에게는 많이 남습니다.

우리나라도 신분제가 있었죠. 차별이 심하고 부모의 삶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살아야 하는 삶이란.. 참 억울하고 슬펐을 것 같습니다.

“나이, 출신, 성별의 한계 등 이 모든 제약을 뛰어넘는 기가 막힌 인물들이 역사에도 종종 등장합니다. 타고난 조건이 뛰어나서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아닙니다.’

강우규는 평안남도 덕천 가난한 농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가 어렵게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총기가 남달랐다고 합니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강우규는 시내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재산을 축적하여 만주 홍원으로 이주한 후 잡화상도 크게 운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우규도 “자신이 애써 모은 자산을 모두 민족 교육에 바쳤다”고 합니다.
그는 새로 부임할 사이토 총독을 암살할 계획을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 총독부고등계 형사 김태석에게 붙잡혔다고 합니다.

그는 “재판장을 당당한 기개로 소신 있기 의견을 밝히기도 했고 재판장을 꾸짖기도 하고 일제를 비웃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1920년 11월 교수형으로 사망한 강우규는 이런 유언을 남겼는데요.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슬퍼하지 말아라. 네가 만일 내 사형 받는 것으 슬퍼하는 어리석은 자라면 내 자식이 아니다.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너무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청년들의 교육을 첫 번째로 여겼던 그는 “세상이 규정한 ‘노인’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65세의 강우규가 던진 것은 단순한 폭탄이 아니라 “일제에 대한 저항이자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외침”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문장이 인상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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