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약속과 행사는 취소되었지만 몇년간 함께 해왔던 작업들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오전에 잠깐 외출하고 왔다. 그 자리에서 넘겨 받은 책이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이라 이렇게 의도치 않게 그들의 책이 내게 건네진다. 예전에는 편의점이 불편했었다. 서로 정답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슈퍼 사장님과 달리 편의점 알바는 나의 역사와 이름을 모르고, 나도 그의 역사와 이름을 몰랐다. 그런 어색함을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지만 편의점은 이제 더이상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서로의 역사를 알리 없는 알바생이 있는 그곳이 참 편리할뿐이다. 이런 지역공동체의 와해와 편의점의 확장을 몸으로 경험했기에 나는 “편의점 인간”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소설의 플롯이 자동적으로 상상되었다. 그런데 웬걸, 내 상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소설은 뻗어나가고 마무리 되어버렸다. 이래서 소설은 꾸준히 읽어야한다.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수상작으로 18년차 알바생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책날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무라타 사카야는 군조신인문학상, 노마문예신인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이 3대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가는 저자를 포함해서 단 세명뿐이라고 한다. 쓰고나니 참으로 귀한듯 쓸모없는 정보이다. 내 마음으로 들어온 부분은 다음과 같다. p117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을 내 인생에서 소거해간다. 고친다는 건 그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지난 2주 동안 열네 번이나 “왜 결혼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았다. “왜 아르바이트를 해?”라는 질문은 열두 번 받았다. 우선 들은 횟수가 많은 것부터 소거해보자고 생각했다. P129 “그야 그렇겠죠. 처녀인 채로 중고가 된 여자가 지긋한 나이에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남자와 동거라도 해주는 편이 훨씬 정상적이라고, 여동생도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당황하던 어제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여느 때의 시라하 씨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정상은 아닌가요?” “이것 봐요.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에게 프라이버시 따위는 없습니다. 모두 얼마든지 흙발로 밀고 들어와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거나 사냥하러 가서 돈을 벌어 오거나, 둘 중 하나의 형태로 무리에 기여하지 않는 인간은 이단자예요. 그래서 무리에 속한 놈들은 얼마든지 간섭하죠.” 저 괴상스런 주장을 펼치는 인물은 시라하다. 시라하는 지금 이 세계가 구석기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는 동의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변하지 않았으니깐. 이 외에 시라하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쓰레기 같다. 하지만 시라하가 쓰레기같은 말들을 하는것은 쓰레기같은 말을 주로 주고받는 사회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니 동정심이 가기도 한다. 저 대사들 다음에 주인공 후루쿠라에게 사회로부터 자신을 숨겨달라고 말하는 시라하를 보며 동정심쪽으로 마음이 확실히 움직였다. 주인공 후루쿠라가 편의점 인간이면 나는 무슨 인간일까? 수많은 욕망들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인간들로 사는걸까? 후루룩 알찬 재미가 있는 책을 읽고 짧은 서평을 쓰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쳇. 저녁이나 차려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