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문학관에 갈 일정이 생겼는데 이병주씨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해 급하게 읽은 소설이다. 생각보다 더 재밌게 읽었다. 지금도 헬조선이라며 난리지만 1940-1950년대는 내가 상상하지 못할 헬조선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p58 결과적으로 보면 이인영 의병대장과 그 동지들의 행동은 위대하기는 했지만 일종의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성공하지 못한 혁명, 목적을 관철하지 못한 저항은 모두 아나크로니즘이다.
그러나 인간의 집념, 인간의 위대함, 인간의 특질이 아나크로니즘을 통해서 더욱 명료하게, 보다 빛나게 나타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그 위상에 있어서나 본질에 있어서나 비극적이라고 할 수밖 에 없다.

p364 "아침에 나갔던 청춘이 저녁에 청춘을 잃고 돌아올 줄 몰랐다"는 구절은 조선어의 운율로 읽으면 랭보의 시를 닮아 절실하기까지 하다.
이제 무엇을 말하랴! 한스 크리비나(카로사, 루마니아 일기」의 주인공)의 절규가 들릴 뿐이다.
나는 병정이란 것을 생각해본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누누한 사시를 쌓아놓고 두보의 시편에 임리한 눈물을 뿌려놓은 병정이라고 하는 그 운명.
병정은 그저 병정이지 어느 나라를 위해, 어느 주의를 위한 병정이란 것은 없다. 죽기 위해 있는 것이다. 도구가 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것은 없다. 죽기 위해 있는 것이다. 도구가 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수단이 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영광을 위한 재료가 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죽느냐고 묻지 마라. 무슨 도구냐고도 묻지 말 것이며, 죽는 보람이 뭐냐고도 묻지 말아야 한다. 병정은 물을 수 없는 것이다. 물을 수 없으니까 병정이 된 것이며 스스로의 뜻을 없앨 수 있으니까 병정이 되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병정이니 더욱 영광스럽고 차르의 병정이니 덜 영광스럽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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