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파란색 소형차가 떠나는 것을 커튼 사이로 바라보았다. 

여섯시가 되면 냉장고 안의 식재료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혼자 먹었다. 

한때 요리사로 일한 적이 있어서 식사 준비는 전혀고생스럽지 않다. 

밥 먹는 동안 페리에를 마시고(알코올은 일절입에 대지 않는다), 그뒤에는 커피를 마시며 DVD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읽는 데 되도록 오랜 시간이 걸리고 몇 번씩되짚어 읽어야 하는 책을 좋아한다). 

그밖에는 이렇다 할 소일거리가 없다. 

이야기할 상대도 없다. 

전화를 걸 상대도 없다. 

컴퓨터가 없어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없다. 

신문도 구독하지 않고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밖에 나갈 수도 없다. 

만일 어떤 사정이 생겨 셰에라자드가 더이상 이곳에 오지 못한다면, 그는 바깥세상과의 접점이 완전히 끊긴 채 말 그대로 육지의 외딴섬에 홀로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하바라를 그다지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혼자 힘으로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뚫고 나갈 수 있어. 

나는 외딴섬에 혼자 있는 게 아니야, 하바라는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나 자신이외딴섬이지. 

그는 원래부터 혼자인 것에 익숙했다. 

그의 신경은혼자가 된다고 그리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ㅣ다음에 올때 장을 봐올 목록을 정리했다. 

유능한 주부인 듯 그 과정 내내 무척 능숙했고 불필요한동작이 없었다. 

일을 끝낼 때까지는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시종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작업을 마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에 실려가듯 두 사람은 자연스레 침실로 이동했다.

셰에라자드는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옷을 벗고 하바라와 함께 침대에 올랐다. 

두 사람은 거의 말하는 법 없이 서로를 안고, 마치주어진 과제를 협력하여 해치우듯이 일련의 절차를 밟으며 섹스를 했다. 

생리중이면 그녀가 손을 써서 목적을 달성했다. 그 능숙하고도 조금은 사무적인 손놀림은 그녀가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섹스가 끝나면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말하는 건 주로 그녀였고, 하바라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어쩌다 짧은 질문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시계가 네시 반을 가리키면 셰에라자드는 이야기 도중이라도 바로 끊고(왜 그런지 꼭 이야기가 한창 재밌어지는 참에 그 시간이 되곤 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흩어진 옷을 주워 입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저녁밥준비를 해야 해. 그녀는 말했다.

은근히 두툼해지고 눈 옆에는 주름이 져 있었다. 

머리 모양과옷차림과 화장은 아주 엉망은 아니지만 그리 감탄할 만한 것도못 된다. 

얼굴 생김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은데 포인트라 할 만한 부분이 없어서 희미한 인상밖에 주지 못했다. 

길에서 스치더라도,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에게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십 년 전에는 발랄하고예쁜 아가씨였을지 모른다. 

몇몇 남자는 그녀를 뒤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랬다 해도 그런 나날은 어느 시점엔가이미 막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그 막이 다시 오를 기미가보이지 않았다.

셰에라자드는 일주일에 두 번꼴로 ‘하우스‘에 왔다. 요일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주말에 오는 법은 없었다. 

주말은 아마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해서일 것이다. 

나타나기 한 시간 전에 반드시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서 차에 싣고왔다. 

파란색 마쓰다 소형차다. 

오래된 모델로, 뒷범퍼가 눈에띄게 움푹 우그러졌고 휠은 먼지가 끼어서 새카맣다. 

그녀는 차를 ‘하우스‘ 주차장에 세우고 해치백을 열어 슈퍼마켓 봉투를 꺼낸 뒤 양손으로 안고서 초인종을 눌렀다. 

하바라는 현관문의 방범렌즈로 누구인지 확인한 뒤 자물쇠를 돌리고 체인을 풀어 문을 열었다. 

그녀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가져온 식료품을 분류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걱정거리를 젖은 걸레로 칠판을 닦아내듯이 깨끗하게 지워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바라는 생각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지금 하바라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이었다.

셰에라자드는 서른다섯, 하바라보다 네 살 많고 일단은 전업주부이고(간호사 자격증이 있어서 이따금 필요할 때 불려나가는것 같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 있다. 

남편은 평범한 회사에 다닌다. 집은 여기서 차로 이십여 분 거리다. 

적어도그것이 그녀가 하바라에게 알려준 자신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였다. 

그것이 거짓 없는 사실인지 어떤지도 하바라가 확인해볼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의심할 이유도 딱히 찾을 수 없었다. 

이름은 말해주지 않았다. 

내이름은 굳이 알 필요 없잖아? 하고 셰에라자드는 말했다. 

분명맞는 말이다. 그녀는 그에게 어디까지나 셰에라자드‘이고, 그것으로 당장은 불편할 일이 없었다. 

여자도 하바라의 이름을ㅡ물론 알고는 있을 테지만 부른 적이없다. 

그것을 입에 올리는 것이 불길하고 부적절한 행위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신중하게 그의 이름을 우회했다.

셰에라자드의 얼굴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천일야화」에 나오는 미모의 왕비와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다. 

그녀는 몸 여기저기에 (마치 틈새를 퍼티로 메우듯이) 군살이 붙기 시작한 지방도시의 주부로, 목하 중년의 영역으로 착실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이 은근히 두툼해지고 눈 옆에는 주름이 져 있었다. 

머리 모양과옷차림과 화장은 아주 엉망은 아니지만 그리 감탄할 만한 것도못 된다. 

얼굴 생김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은데 포인트라 할 만한 부분이 없어서 희미한 인상밖에 주지 못했다. 

길에서 스치더라도,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에게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십 년 전에는 발랄하고예쁜 아가씨였을지 모른다. 

몇몇 남자는 그녀를 뒤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랬다 해도 그런 나날은 어느 시점엔가이미 막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그 막이 다시 오를 기미가보이지 않았다.

셰에라자드는 일주일에 두 번꼴로 ‘하우스‘에 왔다. 

요일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주말에 오는 법은 없었다. 

주말은 아마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해서일 것이다. 

나타나기 한 시간 전에 반드시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서 차에 싣고왔다. 

파란색 마쓰다 소형차다. 

오래된 모델로, 뒷범퍼가 눈에띄게 움푹 우그러졌고 휠은 먼지가 끼어서 새카맣다. 

그녀는 차를 ‘하우스‘ 주차장에 세우고 해치백을 열어 슈퍼마켓 봉투를 꺼낸 뒤 양손으로 안고서 초인종을 눌렀다. 

하바라는 현관문의 방범렌즈로 누구인지 확인한 뒤 자물쇠를 돌리고 체인을 풀어 문을 열었다. 

앞에서는 그 이름을 꺼내지 않지만, 그녀가 찾아온 날이면 매일쓰는 작은 일지에 ‘셰에라자드‘라고 볼펜으로 메모해두었다. 

그리고 그날 그녀가 해준 이야기 내용도 간단히 나중에 누가 보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기록해두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완전한 창작인지 아니면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고 부분적으로는 지어낸 이야기인지 하바라는 알지 못한다. 

그 차이를 분간하기는 불가능했다. 

거기에는 현실과 추측, 관찰과 몽상이 구분하기 어렵게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바라는 그 진위에 일일이 신경쓰지 않고 그저 무심히 그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로 했다. 

사실이든 허구든, 혹은 그것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얼룩 같은 것이든 그 차이가 지금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쨌거나 셰에라자드는 상대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화술에 능했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라도 그녀의 입을 통하면 특별해졌다.

말투도 그렇고 은근히 뜸을 들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녀는 듣는 사람의 흥미를 자아내고심술궂게 애태우고, 고민하고 추측하게 만든 뒤에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적확하게 내주었다. 

그 얄미울 정도의 기교는 일시적이나마 듣는 사람이 주위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에올때장을 봐올 목록을 정리했다. 

유능한 주부인 듯 그 과정 내내 무척 능숙했고 불필요한동작이 없었다. 

일을 끝낼 때까지는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시종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작업을 마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에 실려가듯 두 사람은 자연스레 침실로 이동했다.

셰에라자드는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옷을 벗고 하바라와 함께 침대에 올랐다. 

두 사람은 거의 말하는 법 없이 서로를 안고, 마치주어진 과제를 협력하여 해치우듯이 일련의 절차를 밟으며 섹스를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의 대학에 들어가게 되어 신칸센을 타고 상경하는 동안내내 혼자 생각한 것인데, 그때까지의 십팔 년 인생을 되돌아보니 내게 있었던 일 대부분이 실로 창피한 것들뿐이었다.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한심한 일들뿐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나라는 게 너무도 싫었다. 

물론 멋진 추억도 몇 가지는 있다. 

겸연쩍을 만큼 자랑스러운 경험도 없지는 않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수치로 따지면,
생각만 해도 낮뜨거운 일, 나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지는 일이 훨씬 많았다. 

그때까지 지나온 내 삶이나 내 생각도 돌이켜보니 참으로 범속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대개는 상상력이 부족한 미들클래스 잡동사니였다. 

죄다 한데 뭉쳐 큼직한서랍 깊숙이 넣어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불을 붙여 연기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어떤 연기가 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전부없었던 일로 돌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도쿄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나라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 간사이 사투리를 버리고 새로운 말을 익히는것이란 그러기 위한 실제적인 (또한 상징적인 수단이었다. 

결국 내가 하는 말이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니까. 적어도 열여덟 살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멤버들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지. 

그 셋은 이 노래가 비틀스라는 그룹에 좀 약한 편이라고 생각했어. 

명의는 일단 레넌- 매카트니로 되어 있지만."
"그래? 내가 그런 심오한 지식에는 영 어두워서."

"심오한 지식이 아냐.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야." 나는말했다.

"야 됐다. 그런 자잘한 건 아무 상관 없어." 기타루가 수증기속에서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내 집 욕실에서 내 맘대로 부르는 거야. 

무슨 음반을 낸 것도 아니잖아. 

저작권을 침해하는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냐. 

일일이 시비 걸거 없어."

그러고는 후렴구를 그야말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불렀다. 

고음부까지 매우 기분좋게 "바로 어제까지 그애도/거기 있었건만...…"이라나 뭐라나. 

그리고 두 손으로 물을 가볍게 치며 참방참방 천하태평한 물소리 반주를 곁들였다. 

나도 뭐라고 장단을 맞춰주면 좋았을 테지만 도저히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남이 목욕하는 동안 한 시간씩 옆에 붙어서 유리문 너머로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못 된다.

"그나저나 뜨거운 물에 어떻게 그리 오래 앉아 있지? 몸이 퉁퉁 붇지 않냐?" 내가 말했다.

"왜 헤어졌는데?"
"얘기하자면 길고,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
"아시야 사는 애야?" 기타루가 물었다.
"아니, 아시야는 아냐. 슈쿠가와에 살았어. 거기서 거기지만."
"끝까지 갔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끝까지는 안 갔어."
"그래서 헤어졌어?"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것도 있지."

"끝 바로 전까지는 갔고?"

"응, 바로 전까지는."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갔는데?"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말했다.

"그것도 네가 말하는 ‘창피한 일‘ 중 하나인 모양이네."

"그래." 나는 말했다. 그것도 내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일중 하나였다.

"너도 참 어지간히 복잡한 놈이다." 기타루는 감탄하는 투로말했다.

<예스터데이>에 괴상한 가사를 붙인 기타루의 노래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은 덴엔초후에 있는 그의 집 욕실에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섹스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그녀가 하바라에게 베푸는 모든일상적 행위의 어디까지가 정해진 직무이고 어디서부터가 개인적인 호의에서 나온 것인지 (애당초 그것을 호의라고 할 수 있을지 어떨지), 하바라는 판단할 수 없었다. 

셰에라자드는 여러 면에서 감정과 의도를 읽어내기 어려운 여자였다. 

이를테면 그녀는 대체로 항상 심플한 소재의 수수한 속옷을 입었다. 

평범한 삼십대 주부가 일상적으로 입을 만한-그전까지 삼십대 주부와교제한 경험이 없는 하바라로서는 어디까지나 추측하는 수밖에없지만 종류의 것이다. 

어느 대형마트의 세일 때 샀을 법한. 하지만 어떤 날에는 아주 섬세한 디자인의 남자를 유혹할 만한 속옷을 입고 오기도 했다. 

어디서 샀는지 몰라도 한눈에 봐도 무척고급품 같았다. 질 좋은 비단에 정교한 레이스, 짙은 색조를 띤델리킷한 물건이었다. 

그런 극단적인 격차가 대체 어떤 목적이나 사정에서 나오는 것인지 하바라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또하나 그를 어지럽히는 것은 셰에라자드와의 성행위와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밀접하게 이어져 쌍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한쪽만 뽑아내기란 불가능했다. 딱히 마음이 끌리지도 않는 상대와의 그다지 열정적이라고 할 수 없는 육체관계에자신이 이런 식으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혹은 단단히 봉합되어 있는것은 하바라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때 나는 와세다 대학 문학부 2학년이었다. 

그는 삼수생이고입시학원 와세다 대비반에 다녔다. 

그러나 삼수까지 하면서도공부를 열심히 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틈이 나면 입시와 거의 관계없는 책만 읽었다. 

지미 헨드릭스 전기나 장기 외통수풀이 책이나 우주는 어디에서 탄생했는가, 같은 책, 학원은오타구의 부모님 집에서 다닌다고 그는 말했다.

"부모님 집?" 나는 말했다. "당연히 간사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에이, 아냐. 덴엔초후에서 태어나 내내 거기서 컸어."

나는 그 말에 크게 당황했다.
"그럼 왜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데?" 내가 물었다.

"후천적으로 배웠어. 일념발기念發起해서."
"후천적으로 배워?"

"한마디로, 죽자사자 공부했지. 동사며 명사며 악센트까지 모조리 외웠어. 영어나 프랑스어 배우는 거랑 원리적으로는 똑같아. 간사이로 실습도 몇 번 다녀왔어."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영어나 프랑스어를 배우듯이 ‘후천적으로 간사이 사투리를 습득하는 인간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역시 도쿄는 넓은 동네구나 싶었다. 어째 꼭 『산시로』" 같은 소리지만.

"홈스테이?" 나는 감탄해서 말했다.

"사투리 배우는 정성으로 입시공부를 했으면 삼수까지는 안했을 텐데." 기타루가 말했다.

정말이지 맞는 소리라고 나도 생각했다. 제가 말해놓고 제가딴죽을 거는 점도 그야말로 간사이 사람다웠다.
"그래서, 너는 어디서 왔어?"

"고베 근처."
"고베 근처 어디쯤?"
"아시야." 나는 말했다.
"완전 좋은 동네잖아? 처음부터 똑 부러지게 아시야라고 말하면 될 것을 복잡하게 에두를 거 없이."

나는 설명했다. 

누가 출생지를 물었을 때 아시아라고 대답하면 아무래도 유복한 집 자식이라는 이미지를 주게 된다. 

그러나똑같은 아시야라도 실상은 각양각색이다. 

우리집은 딱히 유복하지 않다. 

아버지는 제약회사에 다니고 어머니는 도서관 사서로일한다. 

집도 작고, 차는 크림색 도요타 코롤라다. 그래서 누가출생지를 물으면 쓸데없는 선입견을 주지 않도록 항상 ‘고베 근처‘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뭐야, 내 경우랑 완전히 똑같네." 기타루는 말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맨 처음 알아챈 변화는 선생님이 점심을 드시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전에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간단히라도 꼭 챙겨 드셨거든요. 

아무리 일이 바빠도 식사는 꼬박꼬박 챙기시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점심을 아예 안 드시는 거예요. 

뭐좀드셔야지요‘라고 권해도 ‘걱정할 거 없어, 식욕이 좀 없어서 그래‘ 하시면서, 그게 10월 초의 일입니다. 

그 변화에 저는 불안해습니다. 

선생님은 매일매일 정해진 습관을 바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이었으니까요. 

일상의 규칙성을 무엇보다 중시하셨죠. 

문제는 점심을 거르는 것만이 아니었어요. 

어느새 스포츠센터에도 발길을 끊으셨더군요. 일주일에 사흘은 스포츠센터에 나가 수영이나 스쿼시,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하셨는데, 그런것들에 완전히 흥미를 잃으신 눈치였어요. 

그리고 옷차림에도예전처럼 신경을 쓰지 않으셨고요. 늘 깔끔하고 세련된 차림이셨는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점점 매무새가 흐트러졌어요. 

며칠씩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생각에 잠긴 기색으로 점점 말수가 줄더니 이윽고 거의 입을 열지 않고 멍하니 계시는 때가 많아졌어요.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전혀 안 들리는 것 같았어요. 퇴근 후에 여자를 만나는 일도없어져버렸고요."

낼 것은 봉투에 넣어 정리했습니다. 

욕실에 가 목욕물을 빼고 욕조를 닦았고요. 

물때가 욕조 벽에 선처럼 끼어 있는 것을 보니꽤 오랫동안 물이 그대로 고여 있었던 것 같았어요. 

깔끔한 성격의 선생님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정기적으로 부르던 하우스클리닝도 끊어버리셨는지 가구마다 부옇게 먼지가 앉아 있었어요. 

다만 의외로 주방 싱크대에서는 오물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어요. 

아주 깨끗한 상태였죠. 

한참 주방을 안 쓰신 거예요. 

생수병 몇 개만 굴러다닐 뿐, 뭘 드신 흔적은 없었어요. 

냉장고를열어보니 뭐라 말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안에 방치되어 있던 것이 죄다 상했더군요. 

두부며 채소,과일, 우유, 샌드위치, 햄, 그런 것들이요. 전부 큼직한 쓰레기봉투에 넣어 맨션지하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가져갔습니다."

청년은 빈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각도를 바꿔가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눈을 들고 말했다.

"집안을 원래에 가까운 상태로 만드는 데 세 시간 넘게 걸렸던것 같아요. 

그동안 창문을 내내 열어둬서 불쾌한 냄새도 대충 가셨지요. 

그래도 선생님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어요. 

제가 집안여기저기를 오가는 걸 그저 눈으로 좇고 있을 뿐이었죠. 

여위신만큼 두 눈이 평소보다 훨씬 크고 촉촉해 보였어요. 

그러나 그눈에서는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죠.

청년은 그쯤에서 몇 차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시간을 끄는 것 같군요. 이야기를 짧게 줄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도카이 선생님은 거식증 비슷한 것에 걸리신 거예요.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물만으로 생명을 유지하셨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거식증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거식증 환자는 대부분 젊은 여자예요. 

미용을 위해 살을 뺄목적으로 식사량을 줄이고, 그러다가 몸무게를 줄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아무것도 입에 댈 수 없게 되죠. 

극단적으로말해 몸무게를 제로로 만드는 게 그녀들의 이상입니다. 

그러니중년 남자가 거식증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도카이 선생님의 경우에는 증상만으로 따지면 명백히 거식증이었어요. 

물론 선생님이 미용을 위해 그러셨던 건 아니죠. 

제 생각에 선생님이 식사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음식이목으로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사병?" 나는 말했다.
"네, 그 비슷한 겁니다." 고토 청년은 말했다. "

어쩌면 스스로제로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자신을 무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가 태내에 태아로 있었을 때와 똑같아. 

그곳에 생각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생각을 여기 지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 그렇잖아?"

"혹시 당신은 태내에 있었던 때도 기억이 나?" 하바라는 놀라서 말했다.

"물론이지." 셰에라자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리고그의 가슴 위에서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은 기억 안 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