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파란색 소형차가 떠나는 것을 커튼 사이로 바라보았다. 

여섯시가 되면 냉장고 안의 식재료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혼자 먹었다. 

한때 요리사로 일한 적이 있어서 식사 준비는 전혀고생스럽지 않다. 

밥 먹는 동안 페리에를 마시고(알코올은 일절입에 대지 않는다), 그뒤에는 커피를 마시며 DVD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읽는 데 되도록 오랜 시간이 걸리고 몇 번씩되짚어 읽어야 하는 책을 좋아한다). 

그밖에는 이렇다 할 소일거리가 없다. 

이야기할 상대도 없다. 

전화를 걸 상대도 없다. 

컴퓨터가 없어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없다. 

신문도 구독하지 않고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밖에 나갈 수도 없다. 

만일 어떤 사정이 생겨 셰에라자드가 더이상 이곳에 오지 못한다면, 그는 바깥세상과의 접점이 완전히 끊긴 채 말 그대로 육지의 외딴섬에 홀로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하바라를 그다지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혼자 힘으로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뚫고 나갈 수 있어. 

나는 외딴섬에 혼자 있는 게 아니야, 하바라는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나 자신이외딴섬이지. 

그는 원래부터 혼자인 것에 익숙했다. 

그의 신경은혼자가 된다고 그리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ㅣ다음에 올때 장을 봐올 목록을 정리했다. 

유능한 주부인 듯 그 과정 내내 무척 능숙했고 불필요한동작이 없었다. 

일을 끝낼 때까지는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시종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작업을 마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에 실려가듯 두 사람은 자연스레 침실로 이동했다.

셰에라자드는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옷을 벗고 하바라와 함께 침대에 올랐다. 

두 사람은 거의 말하는 법 없이 서로를 안고, 마치주어진 과제를 협력하여 해치우듯이 일련의 절차를 밟으며 섹스를 했다. 

생리중이면 그녀가 손을 써서 목적을 달성했다. 그 능숙하고도 조금은 사무적인 손놀림은 그녀가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섹스가 끝나면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말하는 건 주로 그녀였고, 하바라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어쩌다 짧은 질문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시계가 네시 반을 가리키면 셰에라자드는 이야기 도중이라도 바로 끊고(왜 그런지 꼭 이야기가 한창 재밌어지는 참에 그 시간이 되곤 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흩어진 옷을 주워 입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저녁밥준비를 해야 해. 그녀는 말했다.

은근히 두툼해지고 눈 옆에는 주름이 져 있었다. 

머리 모양과옷차림과 화장은 아주 엉망은 아니지만 그리 감탄할 만한 것도못 된다. 

얼굴 생김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은데 포인트라 할 만한 부분이 없어서 희미한 인상밖에 주지 못했다. 

길에서 스치더라도,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에게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십 년 전에는 발랄하고예쁜 아가씨였을지 모른다. 

몇몇 남자는 그녀를 뒤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랬다 해도 그런 나날은 어느 시점엔가이미 막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그 막이 다시 오를 기미가보이지 않았다.

셰에라자드는 일주일에 두 번꼴로 ‘하우스‘에 왔다. 요일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주말에 오는 법은 없었다. 

주말은 아마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해서일 것이다. 

나타나기 한 시간 전에 반드시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서 차에 싣고왔다. 

파란색 마쓰다 소형차다. 

오래된 모델로, 뒷범퍼가 눈에띄게 움푹 우그러졌고 휠은 먼지가 끼어서 새카맣다. 

그녀는 차를 ‘하우스‘ 주차장에 세우고 해치백을 열어 슈퍼마켓 봉투를 꺼낸 뒤 양손으로 안고서 초인종을 눌렀다. 

하바라는 현관문의 방범렌즈로 누구인지 확인한 뒤 자물쇠를 돌리고 체인을 풀어 문을 열었다. 

그녀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가져온 식료품을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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