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무살 때, 대학을 갓 입학한 그 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흔들림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는 모든 것이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된 삶을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참되게 살기는 쉽지 않다는 것, 내가 추구하던 것은 무엇이었나? 뭐 이런 회의가 들기 시작했을 무렵 한 선배로부터 이 책을 권유받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그리고 어느 잡지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읽었다. 그 안에 모든 철학이 다 들어있다는 말에 궁금증이 일었다. 그때만 해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그렇게 큰 울림으로 와 닿을지 몰랐다.


대학 졸업반을 앞두고 있던 그때,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준비를 해야 하는 그때,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 장 한 장, 어느 구절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밑줄을 그어가며, 생각을 되새기며 그렇게 아껴 아껴 읽었다. 덕분에 졸업 뒤의 삶이 두렵지 않았고, 어디에서든 삶의 현장에서 우직하게 살면 되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덕분에 마음이 풍요로운 가을을 보냈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둘레 사람들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참 많이도 선물했다. 이 책의 전도사가 되다시피 했다. 처음 나한테 책을 권해준 선배와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책에 나오는 구절을 다 외우다 시피해서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책은 내가 아끼는 책 1호가 되었다. 그렇게 신영복선생님을 알게 되고 그 뒤로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 신영복 함께 읽기를 읽으면서 선생님은 내마음의 스승이 되었다.

신영복선생님을 만나게 해준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니 그 뒤 다른 어떤 책보다 이 책이 나한테는 소중하다. 딱 한번 선생님의 강연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10년전 이었으니 그때만 해도 선생님의 책이 지금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또 지방이었으니 아주 작은 공간에서 열렸는데 강연이라기 보다는 그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 같았다.

의자가 부족한 작은 강당에서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서 들었으니 그 느낌이 더 따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뒤 대학 강당에서 두 세 번 강연회가 있었는데 그때 마다 다른 일과 겹쳐서 가보질 못해 아쉽긴 했지만 아마 처음 그 느낌만큼 감동을 받지는 못했을 것 같다.


햇빛 출판사에서 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청구회의 추억’이 빠져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사계절에서 펴낸 ‘사람 사이에 삶의 길은 있고’ 이라는 책에서 청구회의 추억을 읽고는 그 감동이 잊혀지지 않아 복사를 해서 사람들과 나누어 읽기도 했다. 그런데 돌베게에서 새로 펴낸 증보판에는 ‘청구회의 추억’이 함께 실려 있었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혹시 이 책이 감옥에서 쓴 책이라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청구회의 추억’을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그러면 신영복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청구회의 추억’에는

선생님이 육군사관학교에 강사로 있을 때 등산길에서 만난 꼬맹이 여섯명과의 사귐이 담겨 있다. 한번의 만남을 그냥 사진 한 장의 추억으로 간직하지 않고 2년동안 주말마다 만나면서 그 사귐을 더해 간 따뜻한 이야기이다.

선생님은 무턱대고 말을 걸거나 친한 척 하는 어른들에게 가지기 쉬운 거부감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어린이들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첫대화를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나 나도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무슨 말로 첫대화를 시작할까 마음속으로 궁리를 하게 된다.

열 서너살 먹은 그 아이들한테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은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을까? 작은 인연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놀라울 뿐이다. 일회용으로 그쳐버리는 만남이 숱한 요즘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을 만날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

학습지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던 그 때, 청구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 왔나’ 반성이 되었다. 그냥 스쳐가는 많은 선생님 가운데 한 사람이겠지만 그 아이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날 것인가는 만남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선생님이 말하는 이야기의 가장 근본은 ‘사람’이다.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얻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서 거창하지도 않고 요란스럽지 않다. 투박하고 거칠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고,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얻은 생각이지만 철저하게 삶의 현장에 뿌리박고 있어서 허공에 붕 뜬 그런 공허함이 없다. 그래서 어느 한구절도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고, 책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자기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을 준다.


사랑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글은 인생의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생활을 해나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구절이 되었고, ‘돕는 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라는 구절은 ‘저 혼자만 쓰고 있는 우산’은 없는지를 생각하며 ‘함께 맞는 비’라는 말로 간출여져서 언제나 마음 속에 새기는 글이 되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중요하고, 입장의 동일함은 관계의 최고 형태라는 말은 ‘함께 맞는 비’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밖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보라는 구절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일의 명인에 나오는 노인의 이야기와 목수가 집을 그리는 순서에 대한 이야기, 서도와 필재에 대한 이야기 삶의 현장에 뿌리 박으며 우직하게 살아가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한 그루의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 장송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속에 서고 싶습니다. 한 알의 물방울이 되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 바다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지막한 동네에서 비슷한 말투, 비슷한 욕심,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싶습니다.' 라는 선생님의 말씀처 나도 내가 뿌리 박은 삶의 터전에서 사람들과 함께  바다로 나아가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tmedusa 2009-01-02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ver Opencast의 "風林火山의 분야별 대표 도서 소개"(http://opencast.naver.com/BK175)라는 캐스트의 캐스터 風林火山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제 캐스트에 발행했는데, 혹시라도 발행을 원치 않으시면 '캐스터에게 한마디'에 적어주시거나, itmedusa@gmail.com으로 메일 주세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아담을 기다리며 - 개정판
마사 베크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첫아이가 세살 때, 아이보기에서 어느정도 여유로워졌을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걸 알면서도 태어남을 선택한 엄마. 그리고 아담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신비한 체험들...... 소설이 아니라 실제 겪은 실화라니 이야기의 여운이 더욱 오래 가시지 않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아담의 엄마 마사가 겪는 신비한 체험...... 저 산 너머에 있을게 아니라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을 나는 모른 체 하며 살고 있는걸 아닌지 그런 생각들로 한동안 마음이 많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아담의 여운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였을까?

“제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게 해주세요.” 

“순하고 착한 아이가 태어나게 해주세요.” 

차마 이런 기도를 올리지 못했다. 그저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한테 오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는 다짐을 되새기면서 그렇게 임신기간을 지냈다.

기형아검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첫아이때보다 불안한 마음은 덜 했다. 그때는 임신을 계획하고 있던 때라 그랬는지 ‘장애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키울 것인가?’ 하는 것이 책의 중심인 냥 읽었던 것 같은데 몇 년 만에 다시 읽어 보니 그건 이 책에서 말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마사와 존은 하버드대학원생 부부이다. 하버드 대학이란 무엇인가? 모든 완벽을 의미하는 듯한 하버드 대학생원생부부인 마사와 존은 다운증후군인 아담을 임신하면서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마사는 아담을 임신하면서 인형조종자가 자기를 움직이는 듯한 신비한 체험들을 겪게 되는데 일본에 가있는 남편 존을 그리워하자 남편 존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올 때 자신을 붙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남자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심한 하혈로 힘들어 할 때 도와주는 존재를 느끼기도 하고, 몹시 힘들고 어려울 때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껏 눈에 보이고, 객관적으로 사실이라고 증명된 것만을 진리라고 믿어왔던 마사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무엇이든 자기가 듣고 보고 느낀 것을, 그것이 거짓이라고 증명되지 않는 한 기꺼이 믿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마사와 존은 겉으로 보기엔 하버드대생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것처럼 보이는 완벽한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마사는 용기가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줄 모르는 방어적인 태도에다, 실패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전형적인 하버드대학원생이었다. 그러나 그런 불안함을 자신감으로 가장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기안에 있는 독종을 이끌어 내, 겁이 없고, 공격적이고 냉소적이며 지칠 줄 모르는 경쟁심으로 자기를 겹겹이 둘러 싸며 살아왔다. 이 책의 첫 부분에는 하버드대학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하버드대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을 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럼, 앞만 보고, 정상에 오르는 것을 최고 목표라고 삼고 있는 사람들이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도 알 수 있을테고, 우리나라 입시 교육도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버드대학이라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걷던 마사는 홋날 직업상담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엄격하게 훈련된 재미없는 일이 좋은 삶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정상적인 기준을 따르는 노력을 그만두고, 안정보다는 풍요로운 경험을 중심으로 생활을 설계하라’고 말한다.

무슨 일을 선택할 때 특히 그것이 직업일 때는 더욱이 그 선택의 우선순위를 ‘안정’ 에 두고 있는 요즘 사람들에게 마사의 이 제안이 어떻게 다가올까?  내 아이가 커서 진로를 결정하고 직업을 선택할 때 나는 안정보다는 내아들과 딸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사와 존이 처음부터 다운증후군 아이를 쉽게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물론 마사는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을 느끼면서 불안한 마음을 많이 줄일 수 있었지만, 남편 존은 처음에 다른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만일 아이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태어난다면 아기의 고통을 연장시키지 않는게 낫지 않냐는 남편의 말에 마사는 

“아이가 얼마나 똑똑해야 부모가 받아들일 있는 거야? 얼마나 잘생겨야 돼? 얼마나 건강하고 얼마나 튼튼해야 되는 거야?” 하고 울부짖는다. 달리기 위해서 사는 말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 그 말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거나 같은 일이라는 존의 말에 “말은 달리기 위해서 사는데 사람은 뭘 하려고 사는 거야?”라고 되묻는다.

그래, 대체 사람은 뭘 하려고 사는 거지?

그러나 존은  ‘어째서 사람들은 완전해야 되고, 온갖 것을 제대로 해야 되고 실수는 절대 해선 안되는지, 애를 쓰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고 평생동안 자기가 모자란다고 느껴야 하는지 왜 그대로 충분하지 않는지, 생긴대로 그앨 사랑할 수 없는 건지’ 자기 자신에게 되묻고 있었다.

“어째서 아기니까 그냥 사랑 할 수 없는 거야?” 하고 되물으며 울고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무슨 힘으로 살아가는가? 어렵고 힘든 일을 닥쳤을 때 그것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내 경우엔 그건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따뜻한 정, 사랑이었다. 그걸로 용기를 얻고 어려움과 아픔을 이기는 힘을 얻게 되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의 짧고 덧없는 삶을 살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고립된 자신을 벗어나 손을 뻗쳐 서로에게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힘과 위안과 온기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인간이 하는 일이며 이것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구절이 너무도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사람들에게 흉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해서 덜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우둔하게 보인다 해서 덜 지혜로운 것이 아니며, 가치없게 보인다고 해서 덜 소중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아담은 주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담이 다운증후군 아이가운데서도 뭔가 특별한 재주를 지닌 아이라거나 장애를 지녔지만 알고보니 다른 뭔가가 숨어 있는 그런 아이는 아니다.  아담은 말을 잘 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좌절하고, 둔하고 느려서 다른 아이들한테 손가락질 받고, 풀죽는 그런 다운증후군이다. 정상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그런 아이였다.

그러나 마사는 아담이 같은 나이의 정상적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만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한다는 걸 알아낸다. 유창한 말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다른 통찰력으로 사물을 바라본다는 걸 알아냈다. 다른 아이들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기를 그만두고 아담의 ‘다른점’을 보기 시작하자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기발하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담은 가식에 감동하지 않고, 인습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그것을 그의 삶의 기초로 삼는데 관심이 없다. 마샤는 그렇다고 아담이 이런 것을 보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실수를 범하질 말라고 한다. 마사는 아담이 하버드 식 반응과 다르게 반응할 뿐이라고 한다. 거만과 가식, 자만으로 똑똑한 체, 모든 것을 다 아는 체, 흔들림 없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 듯이 보이려고 애쓰며 요란을 떨며 돌아다니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물론 ‘멍청한, 보기 흉한, 이상한, 둔한, 느린, 무능한’ 과 같은 수식어들이 아담의 뒤에 따라 다닌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사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걸 마사는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기 위해 평생을 애쓰며 보내지만 사실은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사의 이런 말에 크게 동감하는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중학교때 집 근처를 오가는 길가에 이상한 아저씨가 늘 서 있는 곳이 있었다. 될 수 있으면 그 골목은 피해서 돌아가곤 했는데 하루는 나 혼자 그 길을 지나가다가 멀리서 그 아저씨가 서 있는 걸 보고는 돌아갈까 어찌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린 걸까? 아저씨가 하는 말이 “괜찮아요, 그냥 지나가세요.”하는 거였다. 아저씨가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자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했는지 모른다. 그 일은 나중에 다른 장애우를 만날 때마다 되새겨지는 일이 되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마사가 만난 천사와 빛의 존재를 나도 내 생활에서 느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두 번째로 이 책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  ‘금식을 통해서도 명상을 통해서도 온갖 계율을 지키는 노력으로도 그 길을 찾을 수는 없으며 좋은 사람, 성공한 사람 혹은 옳은 사람이라는 장식을 벗어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내게 위안이 된다.

마사가 아담을 만나면서 겪게 된 여러 가지 일들이 특별한 사람한테 일어나는 특별한 기적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두 번째로 책을 읽을 때는 ‘그래, 나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지. 그래 나도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를 느낀 적이 있었지.’ 하는 생각에 아담의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와 닿았다. ‘보통 사람들이라도, 또는 나쁜 사람들이라도 열려있는 순간, 연민의 순간이 있으면, 선이 쏟아져 들어가 그 공간을 채워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그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은 나한테 또 하나의 희망이 된다.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면,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연민을 가지고 있다면 천사를 만나는 기적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름빵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대강 훑어봤을 때 ‘참 재미있는 상상을 했구나’ 싶었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한 그림책이구나 하는 그런 생각. 그런데 어른의 눈으로 봐서 그랬을까? 재미있기는 하지만 마음을 확 사로잡을 만큼 끌리지는 않았다. 아이들의 마음에서 너무 멀어진 탓일까?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을 가지고 구름빵을 만드는 고양이 가족의 이야기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되짚어보면 아이들의 천진한 마음에 쉽게 동화될 수 없었다는 증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얼마전 도서관에서 세 살배기 아들한테 이 책을 읽어주는데 처음과는 느낌이 확 달랐다. 책을 읽어주는 동안 아이는 연신 “와 구름이다” “나도 구름빵 먹고 싶다.” “좋겠다.”하면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거다. 그제서야 나도 비오는 날 뭔가 재미있는 일은 없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을 집으로 가져와, 그 구름으로 만든 따뜻하고 폭신한 빵을 먹고 하늘을 동동 떠다니는 고양이 형제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와 얼마나 좋을까? 나도 어릴 때 높은 산에 올라가면 꼭 구름을 한 번 만져봐야지. 이렇게 다짐하곤 했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형제들은 직접 구름을 만져보고 너무도 가볍고 폭신한 구름을 가지고 구름빵까지 만들어 하늘을 떠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으니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참 좋겠다’는 부러움이 함께 일어났다.

일곱 살 난 딸아이는 “엄마 나는 구름을 꼭 한번 만져보고 싶다. 하늘도 한번 날아보고 싶어.” 하는 말을 평소에도 자주 해왔다. 구름을 만질 수 있을까?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아직 없는 일곱 살이다.

어릴 적 나를 돌이켜보니 구름을 만져 볼거라는 다짐에서 몇학년 때인가부터 산에 올라가면 구름 있는 데로 돌멩이를 한번 던져봐야지 하는 걸로 바뀐 게 생각난다. 아마도 구름은 만져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정말 그럴까, 만질 수 없는 걸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걸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랬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된 나. 그림책을 읽는 동안은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어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육아책에서 말하기를 ‘어른들이 아이들 수준에 맞추어 몸을 굽히는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의 감정이 이르는 높이까지 높아져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어른들이 먼저 몸을 쭉 펴고 스스로 높아져야 한다던데.... 그동안 내 감정의 깊이가 참 낮아졌나보다.


“누나, 우리도 구름빵 먹으면 좋겠지?”

“응. 구름이 있으면 우리도 구름빵을 만들 수 있대.”

“그리고 하늘도 날 수 있대. 좋겠지?”

일곱 살 난 큰 딸과 누나를 곧잘 따르는 세 살 동생이 나누는 이야기다.

“엄마. 이 아빠는 어떻게 하늘을 날아?”

“음 구름빵을 먹으니까 구름처럼 두둥실 떠 가는거야.”

“엄마, 우리도 구름빵 먹고 싶다.”

“그래. 엄마도 먹고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은 고양이 형제들인데 성별은 다르지만 우리집 남매와 너무나 닮아 있어서 더 친근감이 간다. 비오는 날 아침 동생을 깨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형의 표정, 형 목마를 타고 올라 나뭇가지에 걸린 작은 구름을 가져오는 동생, 따뜻하고 폭신한 구름빵을 만들어주는 엄마, 출근길에 늦어 허둥지둥 뛰어가는 아빠의 모습이 우리들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그리고 마지막에 지붕위에 앉아 구름빵을 먹는 형과 동생의 표정이 너무 다정하고 행복해 보인다.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이 이렇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와 닿을 수 있는 건 이야기와 잘 어우러지는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늘어지지 않는 쉽고 깨끗한 우리말과 정성이 가득 묻어나는 표현기법이 더해져서 이야기를 더 살아있게 한다. 처음 책을 봤을 땐 익숙하지 않은 그림이라서 낯선 느낌도 들었는데 책을 읽을수록 어떻게 이런 것 하나하나까지 표현했나 싶어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상상력이 극대화된 책이지만 집안 구석구석을 담아낸 그림은 작은 것 하나까지 정성을 다했고, 거기다 반입체 기법을 써서 더 사실적으로 와 닿는다.

손으로 그리고 오린 종이인형에 여러 가지 천으로 옷을 입혀 등장인물을 표현하고, 주변소품들은 하나하나 따로 그리거나 만들어 장면 하나하나를 촬영용 세트로 만들어서 사진을 찍었다니 그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 사진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니 빛과 그림자가 살아나 인물들의 표정과 장면이 더 살아 있게 와 닿는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환타지 동화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책 속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았다. 구름빵을 먹고 두둥실 떠오르는 아이들 감정의 깊이까지 이르질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여러번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들한테는 구름빵이야기가 상상이 아니라 그냥 자기 이야기겠구나 싶다. 아이들이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걸 이야기해주는, 아이들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낸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러니까 구름빵 이야기가 아이들한테는 ‘내가 바라고 꿈꾸는 현실’인 셈이다.

구름으로 빵을 만들고 두둥실 떠오르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히는 건 ‘구름’이라는 소재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다가 어른들도 고만한 나이때 누구나 한번쯤 바라고 꿈꿨던 소박한 상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