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빵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대강 훑어봤을 때 ‘참 재미있는 상상을 했구나’ 싶었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한 그림책이구나 하는 그런 생각. 그런데 어른의 눈으로 봐서 그랬을까? 재미있기는 하지만 마음을 확 사로잡을 만큼 끌리지는 않았다. 아이들의 마음에서 너무 멀어진 탓일까?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을 가지고 구름빵을 만드는 고양이 가족의 이야기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되짚어보면 아이들의 천진한 마음에 쉽게 동화될 수 없었다는 증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얼마전 도서관에서 세 살배기 아들한테 이 책을 읽어주는데 처음과는 느낌이 확 달랐다. 책을 읽어주는 동안 아이는 연신 “와 구름이다” “나도 구름빵 먹고 싶다.” “좋겠다.”하면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거다. 그제서야 나도 비오는 날 뭔가 재미있는 일은 없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을 집으로 가져와, 그 구름으로 만든 따뜻하고 폭신한 빵을 먹고 하늘을 동동 떠다니는 고양이 형제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와 얼마나 좋을까? 나도 어릴 때 높은 산에 올라가면 꼭 구름을 한 번 만져봐야지. 이렇게 다짐하곤 했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형제들은 직접 구름을 만져보고 너무도 가볍고 폭신한 구름을 가지고 구름빵까지 만들어 하늘을 떠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으니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참 좋겠다’는 부러움이 함께 일어났다.

일곱 살 난 딸아이는 “엄마 나는 구름을 꼭 한번 만져보고 싶다. 하늘도 한번 날아보고 싶어.” 하는 말을 평소에도 자주 해왔다. 구름을 만질 수 있을까?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아직 없는 일곱 살이다.

어릴 적 나를 돌이켜보니 구름을 만져 볼거라는 다짐에서 몇학년 때인가부터 산에 올라가면 구름 있는 데로 돌멩이를 한번 던져봐야지 하는 걸로 바뀐 게 생각난다. 아마도 구름은 만져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정말 그럴까, 만질 수 없는 걸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걸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랬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된 나. 그림책을 읽는 동안은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어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육아책에서 말하기를 ‘어른들이 아이들 수준에 맞추어 몸을 굽히는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의 감정이 이르는 높이까지 높아져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어른들이 먼저 몸을 쭉 펴고 스스로 높아져야 한다던데.... 그동안 내 감정의 깊이가 참 낮아졌나보다.


“누나, 우리도 구름빵 먹으면 좋겠지?”

“응. 구름이 있으면 우리도 구름빵을 만들 수 있대.”

“그리고 하늘도 날 수 있대. 좋겠지?”

일곱 살 난 큰 딸과 누나를 곧잘 따르는 세 살 동생이 나누는 이야기다.

“엄마. 이 아빠는 어떻게 하늘을 날아?”

“음 구름빵을 먹으니까 구름처럼 두둥실 떠 가는거야.”

“엄마, 우리도 구름빵 먹고 싶다.”

“그래. 엄마도 먹고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은 고양이 형제들인데 성별은 다르지만 우리집 남매와 너무나 닮아 있어서 더 친근감이 간다. 비오는 날 아침 동생을 깨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형의 표정, 형 목마를 타고 올라 나뭇가지에 걸린 작은 구름을 가져오는 동생, 따뜻하고 폭신한 구름빵을 만들어주는 엄마, 출근길에 늦어 허둥지둥 뛰어가는 아빠의 모습이 우리들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그리고 마지막에 지붕위에 앉아 구름빵을 먹는 형과 동생의 표정이 너무 다정하고 행복해 보인다.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이 이렇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와 닿을 수 있는 건 이야기와 잘 어우러지는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늘어지지 않는 쉽고 깨끗한 우리말과 정성이 가득 묻어나는 표현기법이 더해져서 이야기를 더 살아있게 한다. 처음 책을 봤을 땐 익숙하지 않은 그림이라서 낯선 느낌도 들었는데 책을 읽을수록 어떻게 이런 것 하나하나까지 표현했나 싶어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상상력이 극대화된 책이지만 집안 구석구석을 담아낸 그림은 작은 것 하나까지 정성을 다했고, 거기다 반입체 기법을 써서 더 사실적으로 와 닿는다.

손으로 그리고 오린 종이인형에 여러 가지 천으로 옷을 입혀 등장인물을 표현하고, 주변소품들은 하나하나 따로 그리거나 만들어 장면 하나하나를 촬영용 세트로 만들어서 사진을 찍었다니 그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 사진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니 빛과 그림자가 살아나 인물들의 표정과 장면이 더 살아 있게 와 닿는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환타지 동화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책 속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았다. 구름빵을 먹고 두둥실 떠오르는 아이들 감정의 깊이까지 이르질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여러번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들한테는 구름빵이야기가 상상이 아니라 그냥 자기 이야기겠구나 싶다. 아이들이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걸 이야기해주는, 아이들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낸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러니까 구름빵 이야기가 아이들한테는 ‘내가 바라고 꿈꾸는 현실’인 셈이다.

구름으로 빵을 만들고 두둥실 떠오르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히는 건 ‘구름’이라는 소재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다가 어른들도 고만한 나이때 누구나 한번쯤 바라고 꿈꿨던 소박한 상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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