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통해 사랑과 희망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 고 권정생 선생. 가장 낮은 곳의 약한 존재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 고인의 별세를 슬퍼하며 아동 문학가 강정규 선생이 소년한국일보에 조사를 보내왔습니다.

●이제, 당신이 안길 차례입니다

- 강정규

2007, 5ㆍ18 하루 앞두고
56 년 만에 통일 기관차 휴전선 처음 넘던 날
당신 민들레 홀씨 되어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옆구리 고름 주머니 떼어 버려도 되겠지요.
부디 이제 어머니 품에 안기소서

사람들 하찮게 여기는 것 귀하게 여기고
사람들 귀하게 여기는 것 하찮게 여기고
이 땅에서 당신, 가장 낮고 천하게 사셨으므로
가장 높고 귀했습니다.
사람들 좋아하는 것 단호히 뿌리치고
사람들 피하는 것 품 열고 받아들이며
사시사철 무르팍 나온 싸구려 바지, 검정 고무신 신고
빌뱅이 언덕 및 흙집 마당
개구리 풀꽃이며 메뚜기 지렁이까지 친구였습니다

여기서 당신, 상 타지 않았으므로 거기서
받을 상이 크고,
누구보다 아팠으므로 이제 거기서 위로 받을 차례입니다.
여기서 당신, 충분히 슬펐으므로
외로워 울었으므로 누구보다
가난하였으므로 거기서 마땅히 풍요를 누리소서.
그래야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살아 이 땅의 어린이들 살찌우고,
죽어서 재 되어 이 땅의 나무 거름 된다 하셨지요.
여기서 당신, 옆구리 고름 주머니 차고
매일 조금씩 자신을 죽여가며
우리네 젖줄 되어 먹이셨으니 이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서는 당신이 젖먹이
아기 되어 부디 어머니 품에 안기소서.
이제, 당신이 맘 놓고 안길 차례랍니다.

<2007년 5월 17일 깊은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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