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아저씨 손 아저씨 우리 그림책 1
권정생 지음, 김용철 그림 / 국민서관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 옛이야기와는 느낌이 다른 책 한권을 만났다. ‘지성이와 감천’이라는 옛이야기를 권정생 선생님이 다시 해석해서 썼다는 ‘길아저씨 손아저씨’. 보통 옛이야기라고 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반전하는 커다란 사건이 있기 마련인데 ‘길아저씨 손아저씨’에는 뜻밖의 행운이라든가, 주인공이 처해있는 운명을 바꿀만한 커다란 사건이 없다. 그냥 말 그대로 ‘옛날에 이런 사람이 살았더라’ 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노라보면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었을 테지. 어려운 처지이지만 서로 도우며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을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소설 ‘한티재 하늘’을 역사소설이라 이름 짓기는 하지만 그냥 그보다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살았던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아온 이야기’라는 느낌이 더 크게 와 닿는 것처럼, 이 책도 그렇다.

그래서 소박하지만 더 정겹고, 따뜻하다.


‘옛날에 두 아저씨가 있었어요’ 이렇게 시작되는 이 책은 두다리가 불편한 길아저씨와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손아저씨의 이야기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자기 힘으로 걷지 못하는 길아저씨는 하루종일 방안에서 갇혀 지내야 했고, 손아저씨는 그나마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구걸을 해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방안에서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파 묻은 체 앉아 있는 길아저씨, 그 앞에 비친 컴컴하고 커다란 그림자는 아저씨 앞에 놓인 절망의 크기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어느날 손아저씨가 이웃 할머니한테 길아저씨 이야기를 듣고는 그 길로 길아저씨네 집에 찾아가서는 서로 도와 가면서 살자고 말한다. 손아저씨의 말에 금세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 길아저씨는 손아저씨의 눈이 되고 손아저씨는 길아저씨의 발이 되어 그렇게 한몸처럼 살게 되었다. 아저씨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듯 이 때부터는 그림이 아주 밝아진다. 어두운 그림자는 없어지고 두 아저씨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난다.

두 아저씨는 구걸을 하기도 했지만 새끼를 꼬기도 하고 짚신도 삼으면서 부지런히 일을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두 아저씨의 솜씨도 점점 늘어나 이제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꼼꼼하고 솜씨 좋은 아저씨들의 물건을 모두들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아저씨와 손아저씨는 그들의 착한 마음을 알아주는 착한 아가씨한테 장가를 들었다. 두 아저씨는 부지런히 일을 해서 나란히 집도 새로 짓고, 함께 도우며, 사이좋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누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뭐지?’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알고 보니 ‘길아저씨 손아저씨’는 ‘지성이와 감천’이라는 이야기를 선생님이 재해석해서 쓴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펴내기전에도 ‘눈이 되고 발이 되고’ 라는 제목으로 이미 비슷한 이야기를 책으로 냈는데 ‘지성이와 감천’, ‘눈이 되고 발이 되고’, ‘길아저씨 손아저씨’는 이야기의 줄기는 같은데서 왔지만 그 느낌이 서로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길아저씨, 손아저씨’에는 눈이 불편한, 두다리가 불편한 아저씨가 살고 있다고 나오지, 아프다거나 장애가 있다는 말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지성이와 감천이야기에는 다리가 아픈 앉은뱅이, 눈이 먼 장님이라고 나온다. 아프다는 것과 불편하다는 것, 비슷한 말이지만 많은 차이가 있다.

지성이와 감천이도 길아저씨와 손아저씨처럼 몸이 불편하지만 서로의 눈과 발이 되어 도우며 살아간다. 그런데 두사람은 우연히 냇가에서 황금덩어리를 발견하고, 서로 가지라고 양보하다가 싸우게 되자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하고 황금덩어리를 도로 냇가에 갖다버린다. 다른 사람이 황금덩어리를 주우려고 보니 똥으로 변해 있는데 지성이와 감천이 다시 보니 황금덩어리가 둘로 나눠져 있어서 둘은 황금덩어리를 부처님께 갖다 그래서 지성이는 눈을 뜨게 되고 감천이는 오그라졌던 다리가 펴져 걷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지성이와 감천이’ 이야기는 두사람이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산 덕으로 황금덩어리라는 큰 복을 얻게 되고 그해 두사람의 인생이 확 달라지는 반전으로 끝이 나고, ‘눈이 되고 발이 되고’ 에는 두사람이 황금덩어리를 도로 물에다 갖다 놓자 황금덩어리가 두동강으로 나눠 져서, 두사람은 그걸 가지고 마을로 내려가 소도 사고, 논도 사고, 집도 사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걸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런데 ‘길아저씨와 손아저씨’ 이야기에는 옛이야기에서 흔히 나오는 착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운이나 두사람의 운명을 바꿀만한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처지가 비슷한 두 아저씨가 서로 도우며 살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나가는 소박한 이야기이다. 

더구나 석판화로 그린 민화풍의 그림은 이 이야기의 느낌과 너무나 잘 어울려 소박하면서도 정감어린 책이 되었다. 배경을 줄이고, 인물을 중심에 드러낸 그림은 두 사람의 마음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어, 불편한 몸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헤아려 보게 된다. 


아이들한테는 이 이야기가 어떤 느낌으로 와 닿을까?

앞의 두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너무 시시하다고 할까? 어떨까?

고학년이 되어 세 이야기를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눠 보면 참 좋을 것 같다.

서로가 어려운 형편이다 보니 마음이 더 잘 통해서 함께 도우며 한몸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꿈같은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도 어디에선가 어렵고 힘든 처지를 서로 보듬고, 몸과 마음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두 아저씨처럼 큰 불편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 모자란 점이 있어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에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