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투자자의 회상 - 추세매매 대가 제시 리버모어 이야기 탑픽 고전 2
에드윈 르페브르 지음, 신가을 옮김 / 탑픽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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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불만족스러운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항상 마주치는 것마다 불만스러워했다. 전갈은 독침이 꼬리에 달려 있어서 제대로 쓰기 힘들다. 방울뱀은 사냥을 해야 하는데 방울 소리가 커서 사냥감이 도망가버린다. 낙타는 혹 때문에 빨리 달릴 수가 없다. 그렇게 부조리로 가득찬 세상에 살고 있음이 가장 불만스러웠다. 어느 날 소년은 사막을 지나기 전에 목 마를때 마실 수 있는 낙타젖 주머니를 받는다. 소년은 그 주머니를 전갈 꼬리처럼 불편하게 안고, 방울 소리가 들려도 무시하고 지나치며, 낙타가 혹을 달고 있는 것처럼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사막을 건넌다.

이상적인 시장의 모습을 말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 '주식은 기업의 일부분이므로, 주가는 기업 가치를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다. 하지만 실제 주가는 기업 가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이 변할 때가 많다. 많은 투자가들은 이를 '미스터 마켓의 변덕'이라 부르며 가치 대비 큰 폭으로 떨어진 주식을 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자가가 실제로 보답을 받으려면 결국 주가가 올라야 한다. 기업의 이익과 사업 환경은 어디까지나 보조지표에 가깝다. 제시 리버모어는 주식투자를 할 때 철저하게 주가 그 자체에 집중한 인물이다.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여러모로 불만족스러운 소년을 닮았다. 이 기업은 이래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현재 주가는 과대평가되었음을 말한다. 반면 특정 기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으므로 주가 반등이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현란한 이론과 전망을 내세우지만, 막상 실제로 투자를 할 때는 기업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세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자신 있게 이상향을 말하지만 정작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본인이 비판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씁쓸한 모습이 많은 투자자들의 자화상이다.

제시 리버모어는 이에 맞서 '추세매매'를 익혀 월가의 큰손으로 떠오른다. 펀더멘털보다는 주가 흐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기법이고, 부침은 있었지만 몇 번의 큰 위기에서도 리버모어를 구해줄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파산을 겪을 정도로 크게 실패했을 때도 그 원인을 철저히 복기하여 다시금 성공적인 투자자로 떠오른다. 리버모어의 투자기법 뿐만 아니라 투자자로서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제시 리버모어가 겪은 100여년 전의 주식시장은 마치 작은 공동체 같은 느낌을 준다. 월가의 큰손들을 직접 만나고 협상을 할 정도로 명성을 쌓은 리버모어의 후광이 큰 원인이기도 하다.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주식시장의 흐름에 맞춰 다양한 전략을 쓰며, 그 중에는 주가조작과 시장 흐름 조절 등 현대 기준으로 불법인 일도 상당하다. 그렇게 개개인의 욕망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덕에 현대에 '기관'이니 '외인'이니 하면서 피상적으로만 인식하는 대상이 훨씬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실제 모 증권사의 유증사태 등 시장을 뒤흔든 사건들은 리버모어가 겪은 시세조작과 꼭 닮아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들은 비슷하게 행동한다.

리버모어가 겪은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패자에게는 아무런 변명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전투를 치러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리버모어는 현대에도 충분히 통하는 교훈을 제시한다. 특히나 내부자정보의 불완전성을 제시하는 부분은 투자자로서의 탁견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통 가치투자만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보완해주는 훌륭한 이야기다. 주식시장에서 '세력'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P.s. 가존판보다 번역된 문장이 훨씬 정갈하고 깔끔하다. 기존판을 읽은 사람도 재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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