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여름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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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바스 지방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꼬박 한 달이 지났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세로 끝날 것이라던 당초의 예상이 무색하게 전황은 끝없는 교착상태다. 세간의 예상을 깨는 결과지만, 그와 별개로 전쟁으로 인한 폐해는 양 국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모양새다. 교전과 폭격이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피해가 가중되고 예상 밖의 손실을 입은 러시아군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늘 그렇듯 전쟁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 그 후유증이 극복되려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죄의 여름'(원제: 베를린은 맑은가)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본토 공방전 전후를 다룬 역사 미스터리다. 폭격으로 인해 이전의 일상생활의 완전히 붕괴된 상황에서, 청산가리를 이용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미군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인 아우구스테 니켈은 베를린에 진주한 소련 장교의 요청에 따라 용의자를 찾게 된다. 그 와중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전후의 혼란상을 그대로 경험한다. 그리고 놀라운 사건의 진상에 다다르게 된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전후 독일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은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독일 경제에 직격탄을 날린다. 역사적인 초인플레이션이 닥치면서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감자 가격이 폭등한다. 허약한 기반 위에 있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빠르게 몰락하고 아돌프 히틀러를 당수로 하는 나치당의 세력이 급증한다. 히틀러는 기반 유지를 위해 전체주의와 증오를 부추긴다. 이웃으로서 평범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렇게 사회 전체는 광기에 빠져들어 간다.

베를린이 폭격당하고 독일이 패전했지만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모두에게 동일하다.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알던 아우구스테는 미군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할 수 있었지만 폭격을 맞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치안 부재에 시달린다. 베를린에 진주한 4국 군대는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아우구스테가 휘말리는 살인사건도 그런 복잡한 사회상과 맞물려서 커다란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미스터리 사건이 역사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

아우구스테의 사건 조사는 단 이틀만에 끝나지만 이야기의 깊이는 십여 년을 뛰어넘는다. 전후 독일이 겪어야 했던 사회상의 변화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놀라운 반전을 선보인다.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지던 우연들이 모두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했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아우구스테는 진상에 다다르면서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까? 그런 짜임새 있는 모습이 이 소설의 강점이다.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지만 일본인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전후 독일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다만 작가의 말을 볼 때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일본을 묘사하기에는 논란이 되니 독일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역사와 미스터리의 훌륭한 결합을 보고 싶다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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