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사람들이 있을까?암환자 등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처음에는 '왜 하필 나인가'라며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한다. 그러다가 깊은 슬픔에 잠겨든다. 나중에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여생을 정리할 방법을 찾게 된다. 보통 사람에게는 죽음이 세상의 끝과 다름없으니, 한 달 후에 소행성이 충돌한다는 것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보통 사람들은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남겨진 것'들에 엄청난 신경을 쓴다. 청소년이면 교우관계, 성인이면 유산 분배와 같은 식이다. 막상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남겨진 것들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봐도 세상이 그대로 유지되었어도 딱히 좋은 꼴을 더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원했던 것을 향해 모두가 전력으로 질주한다. 그것이 잊고 지내던 가족이건, 듣고 싶었던 가수의 노래건 상관없다. 종말을 앞두고 진짜 본인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이야기 전개는 엄청나게 흥미롭다.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장마다 펼쳐진다. 그런 이야기들의 씨줄과 낱줄이 얽혀져 마지막에 하나의 클라이맥스로 다다른다. 이야기들이 서로 교차하는 모습을 보면서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인연'이 이야기의 형식으로도 구현되어 있음에 놀라게 된다.종말을 앞둔 이야기들 특유의 비관적이나 음울한 분위기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디스토피아가 무엇인가를 극도로 세심하게 묘사했지만,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디스토피아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찌보면 담담한 태도여서 유쾌한 기분까지 들 정도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이런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범인이 있는 정통 미스터리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는 미스터리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 와중에 '이게 이렇게 연결되나'면서 무릎을 칠만한 전개들도 있으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초반의 혼란상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현실과의 데자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