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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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친구로도 유명한 폴 고갱의 본업은 주식 중개인이었다. 화가로서는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리는 소위 '일요화가'였다. 불경기의 여파로 실직한 이후에는 전업화가가 되어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고, 이후 아내와 이혼하고 고흐와의 관계도 소원해지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게 된다.

앙리 루소도 일요화가였고, 49세까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저 자연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색채를 조합하면서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화가가 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일요화가로 살다가 전업화가가 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의 작가인 윌리엄 브리튼도 본업은 교사였고, 작가로서는 '일요 작가' 중의 하나다. 그의 단편들을 모은 책이 본서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다.

폴 고갱과 앙리 루소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요화가여도 전업화가의 경지를 뛰어넘은 사례들은 많다. 윌리엄 브리튼의 소설집도 전업 소설가들을 뛰어넘은 독창적인 단편들로 가득했다. 고전에 대한 오마쥬와 함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xx를 읽은 남자'와 더불어, 새로운 탐정이 활약하는 '스트랭 씨 이야기' 또한 모두 저마다의 멋을 뿜어낸다.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덕목은 훌륭하다. 고전 소설들의 향기가 언뜻 느껴지는 초반을 지나면 중반 이후부터는 독창적인 해석이 펼쳐진다. 언뜻 트릭을 그대로 따온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마지막에 한번 더 변주가 들어간다. 에드거 엘런 포의 '아몬티야토 술통'에서 모티브를 따온 '에드거 엘런 포를 읽은 남자'도 트릭을 깨부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추가로 언급되는 식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편집인 '흑소소설' 시리즈를 쓴 이후 '다시는 단편을 쓰지 않겠다. 장편보다 훨씬 힘들다.' 고 혀를 내둘렀다. 장편인 경우 캐릭터의 매력을 강조하거나 배경을 설명하는 식으로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단편은 참신한 발상만으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는 그 기대에서 어긋나지 않는 소설이었다.

단편선이니만큼 잠깐 잠깐 읽어내려가기도 아주 좋은 내용이다. 이게 일반소설인지 미스터리 소설인지 헷갈리는 작품들에 물렸다가 트릭 그 자체의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며, 스트랭 씨의 활약을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나중에는 '스트랭 씨를 읽은 남자'가 나오면 참 재미있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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