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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사는 게 참 재미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맨 처음 하는 일은 물 한 컵을 마시는 일이고, 마지막에 하는 일은 화장실에 들르는 일이다. 그리곤 집을 나서, 이젠 단련이 된 지옥철을 견뎌내고 무사히 일터에 입성하면, 째깍째깍.. 시계침은 참 부지런하게도 어느새 퇴근시간에 가닿아 있다.'아, 오늘도 밥값은 벌었구나' 발걸음도 가볍게 마트로 직행, 저녁 식탁에 놓을 먹을거리를 둘러보는 것도 잠시, 금세 가라앉은 마음에, 무거워진 장바구니들과 함께, 묵직하게 부은 얼굴로 되돌이표를 찍듯 돌아오는 게, 나의 하루의 대부분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갑작스런 기시감에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에! 사는 게 참 재미가 없구나. 한숨이 절로 새어져 나오는 것이다. 결국 나란 인간은 먹고 싸는 생물학적 기계요, 돈을 벌고 쓰는 경제적 기계에 다름 아닌지, 되도 않는 철학적 물음까지 무한히 뻗어가다 보니 어떤 생각하나가 빼꼼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어릴 땐 참 재미있었다는 거... 어릴 땐 뭐가 달라서? 그땐 뭐가 있었지? 장난감? 불량식품? 아니, 생각해보면 그땐 항상... 이야기가 있었다.
하루키의 인공호흡을 받다.
20대의 필독서라 불리던 ‘상실의 시대’ 이후, 하루키의 최신작을 다시 읽을 기회는 어느날 그렇게 화들짝 놀람과 깨달음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야 찾아왔다.
“택시 라디오에서는 FM방송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토록 차분하고 주의 깊은 첫 문장이라니, 그 묘한 설렘이 좋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는지 모르겠다. 짬이 나는 대로 책을 펼치고 하루키의 인공호흡을 만끽하면서, 조금씩 이야기에 동화돼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남자 주인공 덴고의 생애 첫 기억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내게도 첫 기억이 있었는지, 언제, 어떤 내용이었나를 떠올리며 기억을 환기하는 순간이 찾아왔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첫 기억은 무얼까, 대체로 무심했던 타인에게까지 관심이 생기면서 지금의 삶이 놀랍도록 다르게 보이는 순간과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변화는 1Q84를 읽고 있던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가 보다. 자연스레 요즘 빠져있던 하루키에 대해, 서로의 첫 기억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찾아왔고, 별로 친하지 않던 동료조차 눈만 마주치면 과장된 얼굴로 “달이 두 개라며?” 묻고 다녀서 이미 여러 사람을, 기어코 깔깔거리며 웃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나의 시간은 2010년의 레일을 벗어나 이미 2Q10년의 레일 위에 있는 걸지도...
1Q84의 인물들을 관통하는 상실과 결핍
1Q84를 존재하게 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쓸쓸하고 비어 있다.
인간이 기억함으로써 존재한다면, 덴고의 생애 첫 기억은, 자기 존재의 근원부터 회의하게 만드는, 잔인한 트라우마 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이유로, 가정이든 학교든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을 아오마메 또한, 상처는 필연이다. 결국 반쪽자리 가족을 버리고 자립하지만, 성인이 된 뒤 가진 직업마저 프리랜서 형태인걸 보니, 관계의 온기를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을 아오마메가 안타깝고. 생의 시작점부터 존재의 상처를 안고 달려왔을 덴고는 측은하기까지 하다.
결과적으로 덴고와 아오마메가 만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우시카와 역시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유별난 외모는 비호감의 전형이며, 변호사라는 안정된 직함을 갖고 있었으나 실수로 면허를 상실하고, 한때나마 완벽한 가정을 꾸렸었으나, 그 마저도 지금은 잃어버린 상태다. 아오마메를 지원하는 노부인도 딸을 가정폭력으로 잃은 상처를 갖고 있고 덴고와 공기번데기 소설의 공동 작업을 하는 후카에리 또한 어릴 때부터 속해있었던 선구라는 종교집단을 나와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신세다. 모두가 단절의 경험이 있고 상실된 것이 있으며 마음에 상처가 남았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결핍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훌륭한 동력이기 때문, 아닐까?
복원에의 의지, 관계 맺기
가정폭력으로 딸을 잃은 노부인은 같은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아오마메는 그 과정에서 노부인과 다마루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상처를 극복해간다. 덴고 역시 문자를 통해 존재의 빈 공간을 복원하려한다. 쓰기를 통해 자신도 미처 몰랐던 가장 간절하게 원하던 무언가를 찾게 되고, 뜻하지 않게 자신의 세계로 불러들인다. 그 순간 철로의 레일이 방향을 바꾸고 아오마메가 탄 기차는 덴고가 있는 1Q84의 세계로 질주한다. 처음부터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온전하게 촉감(손)으로 전해졌던 관계의 온기를,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두 사람이 잊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만남의 횟수 같은 것도, 그 완벽한 소통 앞에선, 아무 의미가 없었으리라.
달걀프라이는 달걀은 될 수 없지만...
1Q84의 세계를 떠나기 위해 수도 고속도로 비상계단 아래 서있던 아오마메와 덴고도 이미 이전의 아오마메와 덴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퍼시버와 리시버, 마더와 도터,
한 세계를 창조하기에 완벽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때문에 계단을 거슬러 올라가 당도한 세계의 밤하늘에 달이 하나인지 세 개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달걀프라이는 다시 달걀로 되돌아갈 순 없지만 샐러드나 볶음밥을 만나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덴고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니까, 그들이 창조해나갈 전혀 다른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지... 다음 이야기가 또 나올까?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간 이야기
처음엔 액자소설인가 생각했다가 하루키만의 새로운 형식에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이야기 자체를 이야기의 소재로 쓰다니... 아마도 하루키가 단단히 벼르고 별러서 쓴 소설 같다. 세상에 이야기의 힘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믿는 것이 리얼을 만들어요.
사실이 진실이 되는 게 아니라, 믿음이 진실을 만드는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지닌 게 이야기랍니다. 사실 요 몇 달간 책을 읽으면서 내 삶에 조그만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체험을 했다. 이젠 정말 이야기를 멀리하지 말아야지. 이야기를 만들고 즐길 줄 아는 인간으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