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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 옥구슬 민나 ㅣ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3
김여름 외 지음, 김다솔 해설 / 열림원 / 2024년 5월
평점 :
젊은 작가 소설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들은 참신함을 표방하면서 현 세태를 반영한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결말이 새로우니 별 고민 없이 그냥 넘어갔던 일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한편으로 보이지 않는 사건의 전말을 유추해나가는 재미도 있거니와 여섯 명의 저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엿볼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나마 허용되는.
특히 라유경 저자의 <블러링>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하루 한 번씩 통화를 해서 생사여부를 확인하자고 했던 지인과의 일화를 떠오르게 한다. 물론 지나가는 우스갯소리에 불과했지만 그런 대화가 오갔던 것은 한창 고독사가 이슈가 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고작 5백만 원의 자립지원금을 받고 보육원에서 나온 ‘나’와 공유오피스에서 함께 일하게 된, 부모님의 이혼 후 역시 혼자인 ‘언니’ 미정이 서로 결혼할 생각이 없고 성향은 또 잘 맞아서 법적으로 보호 받는 입양까지 생각하게 되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3년 전 갑자기 언니가 텀블러의 절반 정도 되는 양의 액체가 되어버린 후부터다. 인터넷 로드뷰 사진 중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정보나 보안시설을 블러링 처리해 주는 일을 하는 ‘나’에게 언니가 블러링처럼 지워져 주르륵 액체가 되어버리는 장면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을까. 그런 현상이 외로움의 농도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 유정의 불안은 액체가 된 그녀를 언제 어디든 들고 다니는 것으로 표현된다.
목이 말라 쓰러질지언정 결코 텀블러의 물을 마시지 않는다. 한 손에 쥐어지지도 않는 액체일망정 다시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그 행위는 결혼할 사람과 이민을 갈 때가 되어서야 멈춘다.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텀블러를 언니의 먼지 쌓인 자동차에 두고 나오면서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언니는 고독사해 버렸다. 실체가 있었다면, 입양의 절차를 정식으로 밟은 뒤였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의구심이 든다.
저자는 작가 노트에서 “존재의 빛이 희미하게 느껴질 때, ‘무연고’의 마음을 떠올렸다”고 썼다. 알게 모르게 살다가 사라지는 존재를 글쓰기로 되살리는 ‘작가’들의 사명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고군분투는 사회에 만연한 부당함의 전형이지만 우리는 이미 그 부당함에 만연해져 있음을 직시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