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가에쓰 히로시 지음, 염은주 옮김, 기타무라 다이이치 감수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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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처음은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남극 관측 사업의 추친 역활을 맡았지만 반신반의하는 가야 회장에게 교토 대학 산악부이자 교수인 니시보리가 한 말은 책의 핵심이다. 남극 탐사를 떠난 사람들과 썰매개들에게 이 모든 것은 처음이며 그래서 용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이 전쟁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남극 관측 사업을 실현할 의지를 보인 이유는 패전국인 자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 경제 부흥은 당면한 과제며 미지의 땅을 탐험함으로써 세계에 공헌하고자 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탐사원들의 순수한 과학적 진보에 대한 열의를 엿볼 수 있었다. 아울러 인간과 같은 긍지를 갖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썰매를 끌었던 가라후토견들의 생애도.

최초의 일본 남극 관측 월동대원으로 활약한지 반세기가 지난 봄, 기타무라는 같은 월동대 동료에게서 잊을 수 없는 그날 존재했었던 ‘제3의 개’에 대해 듣게 된다. 오로라 관측 담당이면서 썰매 끄는 개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던 기타무라는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그 뒤 자신을 찾아온 기자와 아무도 모르는 아니, 몰랐던 그 개의 검증을 위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1차 월동대의 교대로 2차 월동대가 도착하기 전 잠시 동안 썰매개들은 기지밖에 무방비상태로 놓이게 되는데 기타무라는 행여 멋대로 돌아다닐까봐 이름표를 달고 목줄까지 단단히 조였었다. 2차 월동대가 주변기상의 악화로 가지 못한 결과 처음부터 그들을 훈련시키고 함께 강설과 동결을 뚫고 남극탐사를 했던 기타무라는 그 뒤 1년이라는 긴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개들을 죽였다는 자책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는 그랬다.

3차 월동대원으로 다시 남극으로 향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사체를 보듬어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서였다.

모두 죽은 줄 알았건만 타로와 지로 라는 형제견이 살아있었다.

나는 처음엔 기적이라기보다 강력한 생존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극이라는 극지가 태생이 썰매개였던 타로와 지로에게 더 큰 투지를 불러일으켰을 수 있다. 야생에서의 삶은 사람이건 동물이건 나름대로 자신도 몰랐던 잠재력을 끌어낼 수도 있지 않은가. 특히 남극 관측 월동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열다섯 마리의 가라후토견은 1년 동안의 탐사로 성공과 실패를 번갈아 겪었다. 리더가 되었다가 뒤쳐지기도 하고, 가장 어리지만 선두견이 되기도 하면서 저마다 고난을 통해 성장했다. 하지만 역시 애초에 그들은 썰매개였다. 무리로 행동해야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가장 어렸던 타로와 시로가 살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를 주위환경에서만 찾았던 여타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뒤늦게 그 때 그 두 마리 외에 살아있었다는 ‘개’의 존재가 부각된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저자는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그 개를 위시한, 남극을 달렸던 탐사견들 모두를 한 번 더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글을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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