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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서는 호수가 자라고 ㅣ 시인수첩 시인선 80
이어진 지음 / 여우난골 / 2023년 11월
평점 :
개인적으로 한 눈에 쉽게 읽히느냐 없느냐로 시의 진의를 가르게 된지 오래되었지만 낯선 시인의 낯선 시집제목은 한 번 들추어보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비록, ‘압축’으로 대변되는 시의 속성을 생각하면 산문처럼 길고 쉼표만 있고 마침표는 없는 시들이 숨 가쁘기는 하나 그래서 한편으로는 끊이지 않고 술술 읽히는 이점도 있다.
단어연결의 어긋남이 문장의 이해를 종종 방해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사물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시인의 거침없는 시어에 익숙해져간다. 완전한 이해보다 불완전한 상상을 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해설에도 형식적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자유분방함이 시의 본질임을 상기시키고 시인 고유의 ‘미학’임을 조명한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시집을 두 권 낸 시인의 시는 정말 도시에서 나고 자랐는지 의문이 들만큼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꽃들의 향기와 자연의 풍광에 대한 남다른 시각이 돋보인다. <벚꽃 크로키>, <목련 기술자>, <장미숲 오페라> 등 언 듯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제목의 시들은 그러나, 잘 들여다보고 음미해보면 연관이 생긴다.
곱씹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시의 여러 특성중의 하나일수 있겠다. 촌철살인(寸鐵殺人) 같은 짧은 시가 보여주는 매력과는 다른 결을 느낄 수 있으며 눈으로 읽는 것보다는 사유하며 운율을 살려 읽는다는 ‘낭송’의 기능을 떠오르게끔 한다. <구름의 부족>에서 특히 말의 힘, 소리의 힘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구름 하고 부르면 눈을 몰고 오는 어느 부족에 관해 생각하는 날이네”
전쟁의 포성이 울리는 하늘을 보며 평화를 기원하는 시인은 상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무력한 문장으로 사죄한다지만 마음을 울리는 ‘시’한 편이야말로 구름의 부족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단언해본다. ‘목련’을 불러보고 ‘구름’을 불러보듯 ‘사랑’과 ‘평화’를 소리 내어 불러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