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생 꽃밭 -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인 저자가 책머리에 썼듯이 수필형식의 짧은 글 모음집은 드물어서 기대를 갖게 한다. 더구나 어느새 고인이 된 상황에서 읽는 단상은 감회가 남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일상의 소회를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게 쓴 이야기는 뭇 사람들에게 인생의 다사다난함과 동시에 찬란함을 상기시킨다.

첫 장에서부터 저자는 나이 육십이 넘는 이 생을 금생(今生)이라 여긴다. 이미 많은 생을 살아왔지만 오늘을 새날 첫 날인 것처럼 산다고 말한다. 나이가 든 만큼 습관처럼 이어져오던 행동, 기억들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희미해지다가 끝내는 지워져 잊혀져버리고 다시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각, 새로운 감각이 들어차는 것이다. 죽음만이 끝일지언정 사는 동안은 항상 언제든지 다시 태어나 어제보다 아름다운 생을 살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맞춤계절의 꽃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꽃밭처럼 매일을 다른 색깔로 채울 수 있다는 뜻이리라.

가족, 지인, 종교, 업 등 책은 저자가 살아오면서 얽힌 모든 인연, 모든 것들에 대한 애증을 여과 없이 풀어놓는데 어떤 에피소드는 자신의 소설만큼이나 직설적이고 적나라하다. 문학가의 비범함을 떠오르게도 하지만 고등학교2학년 때 신춘문예에 입선할 정도의 재능은 차치하고라도 작가가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머물러 있지 말고 먼 영혼에서 현재를 보라.”

스피노자의 이 한마디를 붙잡고 먼 훗날 작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하루에 한편의 소설을 꾸준히 썼다는 고백은 놀랍다. 펜과 노트만 있으면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천재작가로서의 면모만 상상했었는데 그 역시 작가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창작의 열의를 불태운 날들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타 종교를 존중하고 배우려고 애썼으며, 난사람보다는 된사람을 길러야한다며 한 쪽으로 치중된 교육계에 따끔하게 한소리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먼저 떠나간 스승, 친구, 동료에 대한 회한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약속, 인사, 친절의 유용함을 누누이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후회를 남기지 말라는.

셀 수 없이 많은 책을 쓴 것으로 저자는 결코 후회하지 않고 홀가분하게 떠났다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