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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청년 간병’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연신 한숨을 내뱉던 기억이 새롭다.
나 자신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간병을 끝낸 시점에 봐서 그런지 공감이 가는 동시에 40대와 20대의 간병의 간극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간병을 위해 사회적 고립을 자처할 수밖에 없는 청춘들의 삶은 순간의 고통이 아니라 지속되는 고난이기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소설은 세계문학상 수상작답게 현시대의 아픔, 아니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제 막 간병의 굴레를 벗어난 명주와 간병의 초입에 들어선 준성은 내가 간병을 시작할 때의 마음과 점점 지쳐갈때의 상황을 투영한 것만 같다. 비록 끝은 다를 지라도 과정만큼은 유사해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병의 위중은 달라도 간병과 돌봄의 행위는 일관적이다.
산사람은 살아야 된다는 현실은 명주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새로운 환경이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이혼을 하고 위자료를 받는 대신 데리고 나온 딸 은진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제 발로 다시 아빠 곁으로 가게 만든 명주는 그리 계산적이지도 치밀하지도 않은 사람이었건만 간병이 끝난 후의 명주는 용의주도한 사람이 되었다. 뇌졸중 휴우증으로 운신이 힘든 아버지를 돌보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생에 열심이었던 20대의 젊은 준성을 자신이 먼저 내디뎠던 길로 이끌 정도로 말이다.
“간병은 그 끝이 너무나 허무하고 너의 젊음을 앗아갈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아버지도 잃고 싶지 않고 청춘도 잃고 싶지 않았던 준성의 발버둥이 허무한 헛발질이 되리라는 사실은 정해진 수순이다.
환자와 간병인은 출발점부터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지점에 도달할 수가 없다,
희망이 절망이 되고 절망이 체념이 되면 결말은 자명하다.
두 사람은 처음엔 결코 자의적이지 않았다. 끝이 타의적이었다고 나쁘게만 봐야 하나?
‘그래도 그렇지’, 라는 말보다 ‘오죽하면’ 이라고 말해보는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가져보기를 저자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전부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