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든 앨리 - 골목이 품고 있는 이야기
전성호 외 지음 / 바림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한 곳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익숙한 골목으로만 다니는 성격이라 그 동네를 잘 알고 있다고는 섣부르게 말 할 수 없다. 특히 나처럼 소위 길치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면 더 더욱 가 보지 않은 길을 걷기란 애로사항이 많다. 지름길도 있겠지만 특별히 빠른 길로 가야할 일도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같은 길을 걸으며 지겹다는 생각도 간혹 한 것 같다.

갑자기 사정이 생겨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은 곳으로 이사를 온지 3년째다.

처음에는 전에 살던 동네에서처럼 큰길 위주로 똑같은 길을 다녔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동네에 적응도 할 겸 여러 갈림길로 다녀보기 시작했다.

지금 사는 곳은 재개발구역이 16곳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변화의 한 가운데 있다.

골목이 품고 있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지역의 골목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아프게 조명한다.

부산, 서울, 대전, 청주, 대구, 경주, 제주, 광주, 목포까지. 저마다 크게는 지역, 작게는 동네의 골목골목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부산에 살고 있지만 매축지 마을 이라는 곳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일제강점기 시대 해안을 메워 막사와 마구간을 지어 군수 물자를 모았다는데 피란민들이 그 마구간을 잘라 칸칸이 집을 지어 생활했단다. 옛날 큰 집 시골집의 마구간이 저절로 연상되며 고단했던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제는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곳에 노부부가 정원을 가꾸며 살고 계신다니 지나간 날들은 다 추억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방적공장과 금속, 철강공장들로 종일 시끄러웠던 서울의 문래동이 젋은예술가들이 모인 예술촌 골목이 되고 100년의 철도 관사촌의 역사를 볼 수 있음에도 재개발 반대와 찬성, 두 개의 플래카드가 골목입구에 걸려있는 대전의 소제동의 풍경은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거나 혹은, 끝까지 보존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발버둥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역사의 무덤들과 한잠을 자는 경주나 몹쓸 바람이라고 해도 껴안고 사는 제주의 모슬포, 5.18의 가슴 아픈 날들이 아직도 동네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광주, 네모반듯한 나무 어상자가 담긴 세월만큼 치열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목포를 국적도 연령도 제각각인 외국인 사진작가의 눈으로 촬영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아무 사심 없이 보이는 그대로 찍을 수 있는 그들의 눈을 통해 급하게 어느 한쪽의 손을 완전히 들어주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여유와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보기를 바라는 젋은 PD들의 선의를 말이다.

활자와 사진으로 곳곳의 골목을 생생하게 구경한 골목 다큐멘터리 책읽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