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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꾼들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5월
평점 :
간혹 그런 작가가 있다. 소설은 나름 유명한데 이름은 낯선. 신인작가인줄 알았는데 막상 지은이의 연혁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 심지어 언젠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의 원작자라니. 책을 내는 터울이 상당히 길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 권의 책을 쓰는데 심혈을 기울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도 소설집이라고 하기엔 페이지수가 많아서 언제 다 읽을까 싶었는데 오일 만에 완독했다. 단편소설다운 재치와 헛웃음이 나는 와중에 사유하게끔 하는 내용이 작가의 필력을 말해준다.
열편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을 꿰뚫는 매개체는 ‘집’이다. 저자는 비록 ‘잡다한 작품을 모아놓은 선집’이라고 말하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집’이 배경이거나 주체인 것만은 확실하다. 치매인지 아닌지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읽는 나도 헷갈리는 <불평꾼들>의 델라는 스무 살 이상 나이차이가 나는 친구 캐시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서 탈출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뭔가가 누군가가 집밖으로 다시 델라를 데리고 나갈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리어 아들들이나 물리치료사, 방문간호사, 동네여자까지 그녀를 위해 집으로 찾아온다. 델라가 원한 것은 그저 자신의 집에 있는 것뿐이니 굳이 큰 소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일 것이다.
<항공우편>의 미첼은 태국에서 설사가 계속됨에도 치료를 거부하며 성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부모에게 끊임없이 편지로 써서 보낸다. 부모는 아들이 집으로만 돌아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그저 빨리 돌아오라고만 한다.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미첼은 애초에 집에서 나오고 싶어서 구도의 여행을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직 젊은이들에게 집은 안락과는 먼 존재일 수도 있다. 어딘가 허술하면서도 맹목적인 미첼에게 마지막 깨달음은 다름 아닌 편지를 쓸 펜도, 소식을 전해줄 사람도 없다는 사실인데 매우 현실적인 결론인 것 같다.
<나쁜 사람 찾기>의 찰리는 바람과 사기를 동시에 당해 가족에게서 접근근지 명령을 받고, 한때 자신의 집이기도 한 앞마당의 담과 교목사이에 숨어서 아내와 아이들을 훔쳐본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요원한 일이라는 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위대한 실험>의 켄들은 어떤가. 회계사의 꾐에 빠져 기껏 횡령을 해놓고 그 돈으로 한 일이라고는 집안을 고치는 일뿐이었다. 딸과 아들이 집이 춥다며 친구 집으로 떠돌아다니니 가장으로써 큰 용기(?)를 냈는데 사장은 생각보다 주도면밀하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나름 주관이 있고 인생의 어느 지점까지는 잘 살아왔다. 하지만 더 잘해보고자 발버둥 칠수록 상황은 나쁜쪽으로 흘러간다. 순리대로 사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혹은 사회가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현실을 꼬집어 말할 수도 있겠다. 한심하면서도 연민을 느끼게 하는 인물들의 생생한 면면이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를 되새기게 하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