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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파올로 코녜티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월
평점 :
이탈리아 문학을 접해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간혹 영화는 본 것 같은데 말이다.
작가의 이름도 낯설었지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과 유수의 상을 수상했다는 이력으로 책을 선정했다. 그 모든 외양은 낯설었지만 내용만은 너무 낯익어서 역시 사람사람 세상은 다 똑같구나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마저 들었다.
“소피아. 태어나는 게 뭔지 아니? 전쟁터로 떠나는 배와 같은 거야.”
부모도 아니고 병원 간호사가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소피아에게 하는 말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비슷한 내용의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어떤 날은 두려울 만큼 잔잔하고, 어떤 날은 사납게 출렁이지. 삶이란 그런 날들과 온몸으로 부딪치는 것’이라는.
간호사의 그 말이 소피아에게 무의식중에 어떤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린시절 해적놀이에 심취하는 장면이 있는 걸 보면 기시감이 느껴진다.
자동차를 만드는 아빠와 그림을 그리는 엄마사이에서 소피아가 뱃멀미를 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잔잔함과 출렁임이 반복되니 자신을 해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잦은 불화를 보며 자란 소피아의 인생항로는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넘나드는 여배우를 향한다. 그 여정에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펼쳐진다.
지극히 현실적인 아빠의 일탈, 감성적인 엄마의 우울, 젊은 날을 혁명 활동에 바친 고모, 예술가의 기질이 다분했던 첫사랑, 같은 길을 걸으며 기쁨과 슬픔을 공유했던 룸메이트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뉴욕에 온 영화감독 지망생인 피에트로와 유리. 그들을 둘러싼 배경과 상황이 한 세대를 통과하는 의례라는 것은 굳이 세세히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나라 어느 누구든 겪음직한 일들이라는 것.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카메라 앞에서 진짜 생을 살고 카메라 밖에서 연기를 하는 소피아의 불완전한 생활도 특별하게 볼 일이 아니다. 제목에서부터 남다른 기운을 풍기던 소피아도 상처받기 싫어서 검은색 후드안으로 몸을 숨긴 것뿐이다. 용기란 타고나는 것인지, 배우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자신에겐 모든 게 두려운 일투성이라는 소피아. 주변사람들의 감정의 변화를 보며 나름 답을 내본다면 이 정도쯤 되겠다. 용기란 살면서 저절로 생기는 거라고. 결단을 내리는 그 모든 순간이 용기라고. 소피아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자신만의 항구에 닻을 내린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가 볼일도 없을 것 같은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독서였다. 작가의 필력이 그만큼 힘이 있다는 반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