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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상1 - 시간을 넘어온 손님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0월
평점 :
누구나 한 번쯤은 다시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혹은 과거의 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환생이나 회귀, 몸이 바뀌는 설정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리만족.
주인공이 현대의 기억을 가지고 고대에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부터가 진부함을 탈피한 21세기 무협물같아서 첫 장부터 흥미를 유발했다.
주인공 판시엔은 근육에 힘이 빠지는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순간 경국57년이라는 옛 시대의 갓난아기의 몸으로 들어간다. 황제의 측근이라는 스난백작의 사생아라는 신분으로 딴저우라는 곳에서 친할머니와 그림자 같은 눈 먼 호위무사(숙부라 부름), 독약의 대가라는 스승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우며 언젠가 아버지와 동생이 살고 있다는 징두로 갈 날을 기다린다. 불행했던 전생을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잘 살자고 다짐하던 판시엔은 열여섯에 징두로 오면서 충실함을 넘어서 죽음을 넘나드는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그에게는 얼굴도 못본 생모의 유산이 있었는데 지금은 황실의 내고에 들어가 있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내고의 관리를 넘겨주고자 한다. 현재 황실의 내고를 장악하고 있는 황제의 여동생 장공주는 호시탐탐 판시엔의 목숨을 노리며 대척점에 서 있다. 정식으로 혼인도 하지 않고 몰래 낳은 딸과 결혼할 미래의 사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황제의 차기자리를 노리는 태자와 2황자의 암투에 정치적으로도 휘말린다. 판시엔은 혼자 자신의 길 위에 서려고 하나 주위의 상황은 정반대다. 그를 자기 옆이나 아래에 세우고 편을 만들려고 한다. 지켜야할 것이 많은 사람은 약점도 많다. 처음엔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들뿐이었는데, 그래서 별 두려움이 없었는데 징두에 오면서부터 되찾아야 할 것과 보호해야 할 사람들 때문에 점점 어깨가 무거워진다. 전통무협물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기연에 기연을 더해 무림고수가 됐는데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에 철학자처럼 천하의 고민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혹은 모든 걸 버리고 떠나버리거나. 판시엔도 가족과 연인의 정에 둘러싸여 애초의 목적을 잊어버릴 뻔 했다. 자신의 의무이자 풀어야 할 숙제에 소원해 질 때 어머니의 호위무사이기도 했던 눈 먼 숙부는 끊임없이 그를 일깨운다. 네가 지금 가진 것은 너의 힘이 아니라고. 너의 어머니가 여인의 몸으로 천하의 거상이 된 것처럼 너 또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과 주위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결심도 일종의 힘이라고. 답을 찾아 행동하라고.
판시엔이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다정함과 냉철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고군분투하는 것은 약점이 강점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답을 찾은 이상 앞으로의 행보에도 그 약점이자 강점이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