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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셋 달린 소 - 서석도서관 사서 추천 도서,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ㅣ 책고래 클래식 12
김명희 지음, 안준석 그림 / 책고래 / 2020년 9월
평점 :
앞서 우리그림책에 관한 책을 읽은 터라 최근에 나온 그림책 한 권은 꼭 읽어보자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수묵화 같기도 하고 회화 같기도 한 책표지가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무거운 짐수레를 끌고 가는 뿔 셋 달린 소의 힘겨운 표정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솔직히 나는 믿었다. 그림책이 가진 ‘아름다운 끝’을. 착한 이는 상을 받고 나쁜 이는 벌을 받는다는 진부하기 그지없는 전개를 아직도 그림책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벌은 있었지만 상은 없었다. 위안만 있었던 것 같다. 해악만 끼친다는 존재로부터의 위안은 또 얼마나 모순적인지.
민담을 바탕으로 쓴 글쓴이의 의중이 그 모순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소의 뿔이 원래 두 개라야 하는 전제아래에서 세 개의 뿔을 가진 소의 부당한 대우는 당연해 보인다. 그 부당한 대우가 따돌림이고 더 많은 짐을 부리게 하는 학대임은 세상사는 이치에 매우 적합한 수순이다. 소수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찾아보면 뿔 하나 달린 소도 있을 테고 아예 없는 소도 있을 텐데 당장, 눈앞의 소 열 마리 중에 한 마리의 다름은 다수의 폭력을 자연스레 불러일으킨다.
소의 원주인인 김부자는 동생네 일까지 시키는데 그 동생은 일을 마구 시키면서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한다. “허허, 그놈! 뿔이 셋이라 힘도 세구먼!”
그 말은 아홉 마리 보통 소보다 일을 잘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더욱 특별하게 대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다른 이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느라 자각하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했을 게 분명하다. 여차하면 자신도 그 뿔 셋 달린 소처럼 따돌림을 당할 테니.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돌아올 때는 김부자 에게 갖다 줄 쌀가마니를 지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줄을 모른다. 세차게 비는 내리고 바람은 매섭게 불고. 이 장면에서 나는 정말 하늘에서 동아줄이라도 내려올 줄 알았다. 아니, 엄마소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뿔 셋 달린 소를 따뜻하게 품어 주리라 믿었다. 다음 장에 펼쳐진 그림은 당황스러워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별처럼 생긴 분홍색 꽃잎이 달린 나무 아래 비를 맞고 숨을 거둔 소라니.
쌀을 좀먹는다는 바구미가 그 쌀가마니에서 꾸역꾸역 나와서 김부자의 곳간 쌀과, 집과 급기야 김부자까지 모조리 삼켜버려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근거 없는 편견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한 소의 억울함이 마음속에 응어리 졌다. 이 응어리짐이 보이는 ‘다름’과 생각하는 ‘틀림’의 차이를 좀 더 깊고 오래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준 것 같기도 하다.
바구미로 온통 싸인 소가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하나씩 돌을 쌓아 올려 삼각산 이라는 큰 산이 되었다고 하는데 민담인데도 불구하고 실재처럼 느껴 진건 최소한의 색감과 한 단계 낮은 채도로 그린 그림체 덕분이다. 불행한 소를 둘러싼 배경은 반대로 너무 고즈넉해서 내용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끝을 보여준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