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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의 인류사 -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경덕 옮김 / 부키 / 2020년 6월
평점 :
이 책은 인류 중에 왜 인간만이 살아남았는가 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인류하면 지금은 인간을 가르키지만 본래 인류는 우리만 있었던게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 등 우리와 다른 계통의 인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몇만년전 모두 멸종되었고 지금은 우리 인간만이 남아있다. 그들 중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같은 무기를 갖거나 더큰 신체를 갖거나 털이 있거나 하는 등 지금의 인간보다 강한 종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인간이 살아남았는가?
인간과 침팬지의 계통이 갈라진건 700만년전으로 인류계통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라는 종으로 부터라고 한다. 이 인류계통의 특징은 송곳니가 작아진 것과 직립보행이라고 한다. 직립보행의 경우 저자는 정확한 이유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삼림이 축소되고 아르디피테쿠스 하미두스 등 인류계통의 인류가 초원생활을 시작하면서 시작된게 아닐까 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왜 네발이 아닌 두발인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내 생각엔 저자가 말한 사수목에서 힌트가 있는게 아닐까 싶다. 즉 인류나 인류이전의 인류와 침팬지의 조상은 삼림지대의 나무위에서 살기 위해서 4개의 손발이 모두 손과 같이 나뭇가지를 잡을 수 있게 발전했다. 그리고 적어도 손으로 물건을 집거나 던질정도의 편리함을 그때부터 느끼고 있었던거 아닐까? 그래서 삼림에서 소림이나 초원 생활로 전환되었을 때 사수를 네발로 만들기보다는 손을 사용하도록 어정쩡하게 두발만 사용하게 진화가 된게 아닌가 하는게 내 가설이다.
송곳니 같은 경우는 저자는 송곳니가 다른 동물과의 싸움보다는 동종내의 숫컷의 다툼에 쓰인다면서 인류계통이 남녀성비가 얼추 맞아떨어졌고 그렇게 일부일처제가 시작되면서 다툼이 없어지면서 더이상 송곳니를 쓰지 않게 된 걸로 보았다. 직립보행 역시도 일부일처를 하니까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위해 음식을 손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런데 내생각에는 이것은 개연성이 떨어진다. 물론 저자도 모든 인간이 이런 일부일처제를 했다고 하지는 않았으나 지금 인간도 모두 일부일처제를 하고 있지 않다. 지금처럼 인간사회가 아닌 자연상태의 사회에서라면 일부일처보다는 책에도 언급된 다처다부제가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남녀의 성비가 1:1로 맞는다고 해도 숫컷간의 다툼이 없어진다고 말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예쁜 또는 생물적인 기준으로 가슴이나 엉덩이, 골반이 더큰 암컷은 숫컷들에게 인기가 있었을 것이고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여전히 있지 않았을까?
인류가 왜 삼림에서 초원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후에 호모 에렉투스가 왜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는가? 저자는 인류가 약해서 밀려났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시대가 되면서 인류는 진화를 거듭해 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달릴 수 있음로 해서 인간의 행동반경이 넓어졌고 체모는 달리는 인간의 열을 식혀주기 위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육식을 하면서 뇌가 커지고 소화를 하기 쉽게 되었으며 그에따라서 식사나 소화에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어 한가한 시간이 생기고 그 시간에 지적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호모 에렉투스가 전세계로 퍼졌지만 그 이전에 드마니시 원인이 아프리카를 벗어났다. 이들은 호모 에렉투스라기에는 키와 뇌용량이 작다고 한다. 즉 약한 계통이 먼저 쫒겨난듯한 모습이다. 호모에렉투스부터 불과 본격적인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는 호모 에렉투스에서 진화한듯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나타났고 이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에 살았는데 흰피부를 가졌고 키가 크며 뇌용량도 호모 사피엔스보다 컸다. 특히 이들의 뇌와 신체구조상 대화도 가능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은 추운 지역에 적응하며 살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영역을 넓히면서 4만년전에 멸종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에렉투스보다는 더 정교한 석기를 사용했지만 호모 사피엔스보다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좋지는 않았던 거 같다. 즉 작업스킬은 있지만 발명품을 만들지는 못했던 셈이다. 이는 뇌의 구조차의 문제도 있는 모양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뇌용량이 작지만 위아래로 높은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낮지만 넓게 퍼진 구조라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한랭한 지역에 적응했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오자 절멸하고 말았다. 이에 호모 사피엔스가 그들을 절멸시켰는지 아니면 호모 사피엔스의 인구증가가 더 뛰어나 네안데르탈인의 터전을 침범해서 인지는 알 수 없다. 인구증가는 저자가 강조하는 종이 살아남는 조건중 하나같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역시도 인구증가가 빨라서 아르디피테쿠스 하미두스를 밀어냈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럽인의 유전자나 데니소바인의 유전자에서는 네엔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교잡의 흔적이 보인다고 한다. 인류간 식인뿐만 아니라 교잡의 영향도 있었던 것일까? 인간은 가장 강한 호모종이 아니다. 체격도, 뇌용량도, 체모도, 송곳니도. 물론 뇌용량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고 저자가 설명하고 있지만. 어쨌든 인간이 최후까지 남은 것은 인구증가와 약해서 더욱 탄탄했을 사회를 이룬 협력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진화된 창의력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뇌용량은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지금은 더 줄어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문자의 발명이 뇌용량의 필요성을 줄인게 아닌가 하는 가설을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최적화 단계이거나 더이상 인간을 위협하는 다른 위협적인 종족이 없어서 퇴화한건 아닐까?
저자는 아프리카 기원설에 입장을 따라서 설명하고 다지역설은 생략되었다. 여러면에서 고인류에 대한 내용들은 가설이 많다. 그래도 이 책에서 저자의 신선한 가설들을 볼 수 있었고 어쨌든 우리 인간이 최후의 호모종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정확히 설명되고 있는듯 하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