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 만들기 - 미인 강박의 문화사, 한국에서 미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영아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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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주인공이 있었다.
주인공을 향해 댓가를 치러게 해야 한다고 전국이 분노하는가 싶듯니 새로운 여론이 형성되었다. 
목숨은 살려줘야 한다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건의 핵심 주인공이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예쁜 여자. 
그녀의 얼굴을 본 많은 남성들이 구애의 편지까지 보낸다는 말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의 위력을 눈으로 보면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보다 더 씁쓸함을 남긴 사건이었다고나 할까?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예쁜 여자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왜 모두 예뻐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쁜 여자가 되기 위해 모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적극성을 띄게 되었을까?
나는 이러한 것들이 요즘 현 시대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란다.
물론 아주 옛날부터 있었겠지만 근대라는 시대에서 두드러진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단다. 
그것도 1920년대 일제강점기를 넘어가는 과정에서.  


<예쁜 여자 만들기>
 제목으로 인해 자기계발서나 다이어트 책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뜻밖에도 문화사였다.
'예쁜 여자'의 발자취라고나 할까? 
왜 예쁜 여자에 열광하는지,
누가,
무엇때문에,
어떻게,
그렇게 만들었는지 등등에 관한 고찰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s라인이 1920년대에도 강조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 시대에 쌍꺼풀 수술을 한 여성이 등장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다리 미이용술'(조선일보, 1929. 4. 25),
'거꾸로 자전거 타기 운동, 체격을 좋게하는 미용체조'(조선일보, 1937, 11.2) 라는 기사에 거꾸로 자전가 타는 모습의 삽화와 함께 신문에 실렸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정말 s라인은 요즘이 대세가 아니라 그 시대, 그 시절부터 있어왔던 것이었다. 
정말 예뻐지고자 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참 놀랍다.  
하긴 요즘은 남자들도 화장을 하고, 성형을 하고, 나 성형했소 하고 당당히 밝히는 시대이니
뭐 더 할말이 필요하겠는가.
물론 나도 이뻐지고 싶다. 이왕이면 예쁜 여자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예쁘면 더 좋지 않겠는가? 
나의 정신 건강에도 이로울 듯 하다. 내가 지금보다 더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겐 용기가 없다.
성형 수술을 할 용기도 없고, 그것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할 돈도 없지만 용기도 없다.
있었다면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많이 달라졌을까? ㅋㅋㅋ

저자는 이러한 현상들이 여자들이 원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시대가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선 우리 나라를 미개국이라고 알리고자 하는 일본의 각본에 의해서, 
또 출산 장려를 위해, 때로는 출산 억제를 위해,
건강해야 한다고 했다가, 사치로 치부하기도 하면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들 입맛대로 필요할 때만 휘두르는 권력에 의해서. 
긴 치마가 점점 짧아지며 말세가 왔다는 듯이 입으로는 한탄하며, 눈은 그 여성들의 다리를 쫓는 남자들에 의해서 여성들이 예쁘지고자 하는 마음은 점점 노출을 더해가며 시각화 되었다.
나라와 남자들의 잣대에 의해 권해지던 예쁜 여자는 이제는 여성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타인에 의해서건 자의에 의해서건 스스로 '예쁜 여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현대를 살면서 더 필요한 것이 '미'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쁘면 모든 것을 용서 받을 수 있다는 말처럼 예쁘면 입사도 쉽고, 남편감 고르기도 쉬울 뿐 아니라 '미' 자체가 경쟁력이 되고, 상품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저자는 '장미란' 역도 선수를 예를 들며 늘씬하고 예쁜 몸매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게으르거나 무능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이루어 내는 성취감과 숭고함에 아름다움을 보는 것처럼 현재의 고착화된 미적 기준들을 넘어서서 다양한 여성의 몸을 아름다움과 숭고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아름다움의 형태를 좀 더 다원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서 ‘n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외부의 적에 의해 고통 받는 여성을 위로하며,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고 말한다.

처음으로 쌍꺼풀 수술은 한 '오엽주'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고 하는 그녀가 쌍꺼풀 수술을 하고 정말 행복했는지 아닌지는 난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 자신의 선택이었다면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아름다움을 원해서, 예뻐지기를 원해서 자신이 선택했다면(외부의 적때문이라 할지라도 그것도 선택이다)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뻐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인간의 본성과 권력이 더해진다는 사실이 새롭기도 하다.
단순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사회 구조가 권력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우리 곁은 흘러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나친 비약같지만 누군가의 조정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좀 씁쓸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예쁜 여자 만들기'에 이런 찬란한 역사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수확이 아닐까 싶다. 결국 새로운 지식을 채운 기쁨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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