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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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맛에 읽은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것일까? 

읽을때마다 다가오는 것이 다르다.  

처음 읽었을때는 내게 질문하기에 바빴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그리고 지금은?  

또 한 단어에 꽂혔다.  

"언젠가는"  

'언젠가'라는 이 단어. 미루가 명서가 윤이 습관처럼 되뇌이었던 이 말.  

그리고 윤이마저 되뇌이게 되었던 말.

이 말이 서글프다.  

저자는 말했다.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이의 마음속에서 새벽빛으로  

번지기를 바란다고. 그러나 내게는 희망이 아닌 절망으로 다가온다.  

새벽빛이 아니라 지는 노을에 붉게 물들어가는 씁쓸함으로 남는다.  

언젠가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그들의 미래에 무엇이 남아 있단 말인가? 

서글픔만이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루어지지 못한 그들의 사랑이 서글펐고 

자신의 목숨을 놓아야 했던 그들의 현실이 서글펐고 

그런 시대를 살아내어야만 했던 그들의 삶이 서글펐고 

바윗덩어리를 안고 있는듯 짓누르는 그 현실을 벗어나고파  

언.젠.가.는. 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막막함을 달래어야 했던 그들의 서글픔이  

내 마음까지도 서글프게 했다.  

그렇기에  

희망을 간직한 듯 보이는 언.젠.가.는 이라는 이 말은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언젠가는 이라고 되뇌이었든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미래처럼  

단지 바라는 마음뿐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는 현실처럼 말이다.   

 

신경숙 작가의 책엔 언제나 이런 서글픔이 아픔이 존재하는 듯 하다.   

책장을 덮고 난 순간이면 묵직해지는 마음을 달래길 없어 같이 울게 하는 서글픔이 있다.

왜 그럴까? 

나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 험한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깊은 슬픔속의 은서가 느꼈던 그런 서글픔,  

엄마도 여자였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엄마를 부탁해의 큰딸이 느끼던 서글픔,  

이젠 내용마저도 가물거리는 바이올렛에서 느꼈던 서글픔  

분명 종류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글픔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서글픔때문에 빠져드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감정을 눈 앞에 펼쳐놓고 들여다보기라는 하는 것처럼  

세세히 파헤치는 섬세함속에 들어 있는 감정의 서글픔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제목속엔 저자의 바램처럼 희망이 숨쉬고 있을테지만 

난 책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어디에서도 희망을, 긍정을, 낙관을 찾을 수가 없다.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절망의 전화벨이 울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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