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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쁜 제목이 품고 있는 뜻은 슬프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두렵기까지 하다.
혹시 내 기억도 피아니시모 상태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
피아니시모 상태가 되면 어쩌난 하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느꼈던 감정보다 몇 배는
더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불안감.
이런 불안감이 싫지만 요즘 내 기억력의 상태는 정말 책 속에 등장하는 앨리스와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기억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느 한 부분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나를 잃어버리고
나의 일상을 잃어버리고
급기야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는
살아있음에도 살아있다는 것 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영화를 본 후 저렇게 된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완전히 나를 잃어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나를 붙들고 있을 기력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덜 추하다고 느낄 때 나를 놓아버려야지 생각했었다.
앨리스도 그랬다.
심리학 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세계적으로 강연을 다니고
사랑하는 남편과 세 명의 자녀, 무엇 하나 빠질 것 없고, 부족한 것 없이
자신의 인생을 멋들어지게 살아가고 있던 여자,
앨리스.
이제 겨우 50대이건만 자신이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앨리스가 받아야 할 충격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지만
앨리스도 나처럼 기억이 조금이라도 있을때 자신을 먼저 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에 메모를 남긴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에 하나라도 대답하지 못할 경우에 취할 행동을 메모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메모의 내용대로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자신이 하려고 했던, 아니 조금 전까지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당연히 먼저 자신을 놓아야겠다는 계획은 그렇게 묻혀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앨리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위안이 된다.
그러나 용감한 앨리스는 실망하고 절망하며 울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상태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 또한 받아들이고
알츠하이머를 앓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을 대변해서 강연까지 하는 용기있는 사람이다. 정말 나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절망할 것만 같은데 끝까지 자신의 삶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앨리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앨리스를 지키고 싶어 하는 가족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앨리스와 가족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이쁘다. 감동적이다.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
그로 인해 자신이 살아왔던 삶까지도 몽땅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여지껏 살아온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온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기억을 못할 뿐이지
앨리스를 둘러싼 모든 이들은 기억하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혹여
내 기억도 피아니시모 상태에 놓인다고 해도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삶 자체가 피아니시모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며 나를 그리고 나의 삶을 끝까지 사랑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