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면허 프로젝트 - 드로잉 기초부터 그림일기까지, 삶을 다독이는 자기 치유의 그림 그리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김영수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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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뭔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다양하게 보고 느끼며 그걸 설명하기 위한 연결고리를 짓는 일이다. 창작은 세상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숨지 않고 그것과 대면하는 일이다.     p11 시작하는 글에서

  제목에 눈이 가고 눈이 가니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니 손이 갔다. 그래서 읽고 싶은 목록에 넣어두고 결국은 읽고야 말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난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욕심도 있고,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왜 욕심이라는 단어를 쓸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마음을 접지 못해 여러 색이 다양하게 들어 있는 색연필을 구입하고 스케치북을 구입해서는 그냥 책상에 전시만 하고 있으면선도 수채화를 가르쳐 주는 학원에 한 번 가볼까하고 기웃거리도 한다. 언젠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펜을 들고 앉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좌절한다. 난 정말 재주가 없나봐... 그래서 눈에 띄었던 책이다. 창작면허라니?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창작을 할 수 있는 면허를 딸 수 있다는 건가? 면허를 주겠다는 건가? 누가??? 그런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창작면허 프로젝트>를 쓴 대니 그레고리는 광고회사에서 20년이나 근무한 베테랑이란다. 어느 날 자신을 위한 일을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글도 쓴다. 참으로 멋있는 아저씨다. 그런데 이 아저씨 쓴 2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없다. 꼭 사무실이나 학교 수업 중에 어쩔 수 없이 자리만 지키는 학생이나 회사원들이 흔히 하는 낙서장 같은 느낌이다. 그림 따위들을(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낙서같은 느낌이 든다) 끄적여 놓고, 간간히 메모를 해 놓은 것 같은 에궁 정말 정신이 없다.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읽다 보면 재밌다. ‘시작하는 글’을 시작으로 9가지 쳅트로 나누어서 그냥 말하듯이 바로 옆에 있는 절친에게 이야기 하듯 글을 쓰고 있다. 때로는 충고를 하고, 때로는 설명을, 하고 방향을 제시하시도 하면서 급기야는 호통을 치기도 한다. 감히 독자에게 말이다.ㅋㅋ 어쨌든 대니 아저씨가 하고픈 말은 간단하다.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이미 예술가인 당신에게 드립니다” 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 창작을 한다는 것에 어려워 하지도 말고 즐기라는 것이다. 누구나 예술가이며, 이미 예술가라고 말한다. 서명을 할 때 특별한 선을 그리고, 운전대를 돌릴 때마다 손으로 선을 그리는 이런 사소한 행위가 이미 드로잉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고 지나갈 뿐이지 이미 예술가라는 말이다. 생각에 따라선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대니 아저씨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일기, 그것도 그림일기를 말이다. 아니 초등학교 1학년 때나 썼던 그림일기를 그리라니 어처구니없이 들리기도 하지만 -책 속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 유치원생 수준의 그림일기에나 나올 법한 그림이 많다- 좋은 창작의 습관을 만들기 위해 그림일기가 필수라고 말하며, 그림일기의 좋은점에 대해 12가지씩이나 자랑거리를 늘어놓고 있다. 뭐 그림일기를 쓰는 것은 쉬운 줄 아나 투덜거려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왜 안된다는 생각부터 하느냐는 호통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 그려야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지 말고 그냥 주위에 있는 사물부터 그려보라는 말이다. 컵도 그리고, 먹던 도너츠도 그리고 하다보면 그리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지. 이쯤에서 흔히들 하는 말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하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그리고 이미 충분히 들었던 그런 말이지만 대니 아저씨의 말들은 꽤 설득력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책 전체에서 이런 말들을 쭈욱하고 있는데 상당히 재밌다. 여러 부분에서 공감도 가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미소를 짓기도 한다.

특히 필이 꽂혔던 말이 있다.(글임에도 불구하고 전부 말로 들린다) 첫 번째가 ‘내가 가진 것들’(p124)에서 나오는 다이어트 일기에 관한 부분이다. 대니 아저씨는 다이어트 일기에 관심이 많단다. 일주일 동안 먹은 걸 전부 그려보라고 권한다. 그린 게 많을수록 앞으론 덜 먹게 될거라나. 그럼 날씬해지고 차분해지며 행복해질 거란다. 이건 우리가 다이어트를 할 때 많이 듣는 말이다. 먹은 목록을 기록하라. 그러나 대니 아저씨는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말한다. 재밌지 않은가? 내가 먹은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 내 눈으로 확인해 본다면. 나도 한 번 해 볼까? 스케치북이 수십 권은 필요할 것 같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섹스와 드로잉의 공통점이라는 글이 있는데 이것도 재밌다. 그러나 패스(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굳이 한 마디 하자면 정말 드로잉을 잘하기 위한 교습이 필요 없는 것일까? 두 번째는 극복하기 부분에서 나오는 글인데 그냥 이 글이 좋다. 나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인용을 하자면 "미적거리면 실패나 평가, 고통, 시험 등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즐거운 경험과 성공, 배움, 성장, 친밀감, 자신감과는 멀어지게 된다. 뭔가를 반드시 미뤄야 한다면 실패를 내려놓기 바란다. 실패는 내일하고 오늘은 그냥 전진하는 거다.“ -미루는 버릇은 정말 대단해 중에서- 정말 멋진 말이지 않은가? 가슴에 꼭꼭 새겨둬야지.

글을 읽은 동안 창작에 관한 면허를 취득한 것은 아니지만 창작이 어렵다는 생각에 미리 갇혀서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고 즐기다 보면 그것이 바로 창작이며, 예술이 되는 거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전진하는 거다. 책상위에 올려 놓았던 색연필을 꺼내어 오늘은 정말 그려보련다. 오늘 내가 먹었던 수많은 음식 중에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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