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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도가니.
광란의 도가니. 어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정말 제대로 바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 그 속에 있는 인간들도 미쳐있기에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안개 속에 잠긴 무진처럼 우리네 세상도 빛조차도 뚫지 못하는 뿌연 안개 속에 갇혀 한치 앞을 볼 수 없으며, 먹고 살아야한다는 명제아래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걸어왔더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바위가 되어 파도와 부딪쳐 싸워야 하는 강인호 삶이 어쩌면 나의 너의 우리의 삶은 아닐까? 기를 쓰고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내 삶이면서도 나조차도 모르는,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가니 속의 세상이 너무나도 비관적이고 절망적이게 보이는 건 그것이 소설 속의 세상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세상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더 - 홀로 더불어’라는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어차피 세상은 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면서 또 그 홀로들이 모여 더불어 살아갈 때 서로에게 빛이 되고, 희망이 되고, 사랑이 되는 것이기에 ‘홀로 더불어’라는 이 말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가슴에 와 박힌다.
불혹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홀로인 것이 몸에 베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방해를 받거나 간섭 받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며, 적당한 선을 그어놓고 그 누구도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나 또한 타인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도 싫어했다. 서로에게 깊이 얽히고설키는 것이 싫다. 적당한 선 안에서의 교제. 언제나 한발을 뒤로 빼고 세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바라보며 거리를 유지한다. 귀찮은 것이 싫으니까. 그것이 나의 삶이 존중받는 것이라 또한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강인호의 처지라면, 내가 서유진이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학교 안에 존재하는 무관심한 아니 끼어들어서 불란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아이들이 당하는 고통을 애써 외면하면서 몰라라 방관했던, 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선생들의 한 명처럼 방관자 쪽에 서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강인호처럼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지켜주고 싶은 마음속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지켜주는, 아니 함께 싸워주는 -결국 그는 자신의 현실 속으로 돌아갔지만 그렇다하여 누가 강인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쪽에 설 수 있는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을까? 인권센타의 간사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여지껏 부딪쳐보지 못한 사건 앞에서 자신의 입으로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그 길을 걸으가는 서유진처럼 나 또한 걸어 갈 수 있을까? 정말 난, 나라는 인간은 자신이 없다. 막상 그것이 나의 현실이 된다면 또 어떻게 대처할지 알 수는 없지만 난 ‘홀로 더불어’의 삶을 살기보다는 ‘홀로’ ‘나 홀로’의 삶을 지향했던 사람이기에 내가 속한 일이 아니라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면 말로는 흥분을 하겠지만 뛰어들 자신은 없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내 일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분노하며 일어서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자괴감이 든다.
서유진이 강인호에게 보낸 멜에서 '싸움에 졌지만 정말 졌다고 할 수 있을까' 반문하하는 부분에서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광란의 도가니같은 세상이지만 그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빛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의미’를 잃지않는다면 그것은 씨앗이 되고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힐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광란의 도가니에서도 바른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적어도 바르게 살고자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거요”
이 세상에 숨을 쉬고 살아가는 존재치고 이 중에 소중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파렴치한 이강석, 이강복 형제 조차도 그의 가족들에겐 소중한 사람이지 않겠는가?
‘도가니’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지고,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홀로 더불어’의 삶을 살지 못했던, 인격을 인격으로 대우하지 못하며 살아온 나를 먼저 돌아보게 한 ‘도가니’ 로 인해 내가 바뀌어야 세상도 바뀐다는 생각을 다시 새겨본다. 정녕 이기적인 삶에 길들여져 있는 나라는 인간은 바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결단력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솟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