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되고 있었다.

어쩜 이 짧은 한 문장이 이 책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린 사람,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의 지나온 발자취를,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이 말이 들어맞는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 이 짧은 문장이 이토록 가슴에 남는 것일까?

나 자신도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일까?

나 자신은 무엇이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일까?

 

  책 속에 있는 문장들은 이 첫 문장처럼 결코 짧지만은 않다. 그러나 별다른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고 깔끔한 것은 이 첫 문장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렇기에 긴 문장도 간결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기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고 살았다. 너무 바빠서 잊어버리고 산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렸다. 

'기'라는 이름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타인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 이름으로 10년이라는 세월을 살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

자신을 잃어버린 채 어떻게 10년이라는 세월을 살았을까?

나였다면 미치지 않았을까? 찾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았을까? 알고 싶은 욕망에 갇혀서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책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어둡고 우울하다. 문장은 깔금하게 떨어지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주인공의 심리나 주인공의 행적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나 상황은 어둡고 음침하고 우울하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막연함이 감돌고 있다.

'기'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의 기억 조각은 마흔 일곱개의 퍼즐로 되어있다. 어떤 퍼즐은 너무나 짧게 사람 이름과 주소, 한 줄만이 등장할 때도 있다.

그 작은 퍼즐 조각을 가지고 과거가 되어버린 지난날을 자신조차도 모르는 자기를 누군가는 알지 않을까하는 희망으로 길을 나선다. 지나간 흔적을 쫓아서 그렇게...

그러나 거기엔 희망보다는 소심함이라고 해야할까?

너무나도 소심하게, 너무나도 신중한 하게 자신의 흔적을 더듬어 나가는 모습이 답답하기만 하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10년을 살아온 사람답게 인내심을 발휘하는 모습이 대단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작가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풍자하고 싶었을까?

아무리 지나간 시간이라 해도 과거없이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체가 어쩜은 망각이라는 시간을 향해 가고 있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허상임을 말하고 싶은걸까?

 

책을 덮는 순간 다시 떠오르는 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닐까?

지나간 내 시간, 이미 잊혀져 버린 내 시간들,

정말 나는 아니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단지 망각의 세계에 서 있는 것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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