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 콘텐츠의 미래를 이끄는 여섯 개의 모멘텀
김경집 지음 / 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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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과거라는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도약하기 위한 인문학적 나침반: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너도나도 콘텐츠를 외치는 시대이다. 무한의 콘텐츠가 우리 주변에서 물결치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모두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의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수많은 기업에서 SNS 서포터즈 모집에 공을 들이는 것 또한 콘텐츠의 중요성을 체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콘텐츠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콘텐츠를 더 나은 방향으로 생산하기 위한 일종의 지도이다.


21세기의 ICBM은 더 이상 대륙 간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Cloud)·빅데이터(Big Data)·모바일(Mobile)의 비가시적인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고 강력한 리더십에 의한 조직 운영이 빛을 본 20세기식 사고에서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창의적인 개인들이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며 가치를 창출하고, 유(有)에서 유(有)를 생산하는 시대이다.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콘텐츠인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탐구(Investigation), 직관(Intuition), 영감(Inspiration), 통찰(Insight), 상상(Imagination)의 다섯 가지 I가 필요하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하시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귀결되어야 하는 곳은 바로 I, 나 자신이다. 결국 답은 사람이다. 콘텐츠를 위한 콘텐츠, 누군가를 비난하고 해하기 위한 가짜 콘텐츠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콘텐츠를 위해 사람을 갈아넣는, 그렇게 사람이 없어지는 현재의 사회 구조는 과감히 깨부숴야 한다. 사람을 탐구하는 인문학자가 갑자기 콘텐츠를 자기 저서의 주제로 가져온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콘텐츠는 곧 사람이다.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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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법정에 선 법
김희수 지음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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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우리를 심판하는 법을 심판대에 세우다: <역사의 법정에 선 법>


유전무죄 무전유죄, N번방을 비롯한 성착취 사건 등 부정의가 판칠 때마다 사람들은 사법부의 판결을 비판하고 법의 개정 또는 제정을 촉구한다. 도대체 법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법의 정의'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일까?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법 그 자체일까, 법의 변화를 기점으로 한 사회 전반의 변화인 것일까? 이 책은 동학농민혁명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을 법의 렌즈로 바라보며 법에 대한 관점을 확장해 준다.


역사 교과서에서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배우는 것이, 실은 2004년 이미 그 정식 명칭이 법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으로 규정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인간 존엄성을 기치로 내세우며 자유와 평등,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쳤다. 민중이 직접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여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투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혁명이라는 용어가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기존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민중이라는 햇빛을 손바닥으로 가려보려는 기득권의 마지막 발악이 아닐까. 3.1 혁명, 4.19 혁명, 촛불혁명 등 민주화를 위한 뜨거운 움직임들에 대한 용어 선정을 사회적으로 다시 논의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또한 법이 정의와 등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법이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규정하는 장치로 이용된 경우가 허다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신분에 따른 차별은 법적으로 당연했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야' 비로소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서구에서도 '우월한' 백인이 '열등한'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여성은 시민 혁명의 주축으로 큰 역할을 하더라도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여성을 제약하는 것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욱 이성적이기 때문에' 법적인 순리였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신자유주의의 채찍질은 자들이 삶을 위해 삶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 모순적인 상황을 법을 통해 정당화한다. 이는 모두 사람답게 살 권리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사회에서 만들어진 비합리적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왜 법을 거스르냐'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왜 이제 와서 예민하게 문제를 제기하느냐'라는 조롱 섞인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표방하는 법의 이름으로 비합리와 불공정을 자행하는 인권 감수성 0점 사회에 계속 제동을 거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독립운동이 테러인지에 대한 일각의 궁금증 또한 저자는 법의 논리로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병탄 당시 한국과 일본이 맺은 조약이 무효하기에 일제강점기 당시의 법을 기준으로 독립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초에 부당하게 한국의 주권을 빼앗은 것은 일본인데, 왜 안중근과 윤봉길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의거에만 법적인 올바름을 요구하는 것일까. 주권을 빼앗긴 가장 긴급한 상황에서 법적인 정당성을 운운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법의 형식을 중시한 나머지 실질적인 내용의 합리성에는 눈을 감는 무지한 태도는 이제 버릴 떄도 되지 않았는가?


이후에도 사사오입 개헌, 유신 헌법, 계엄령 등을 통해 군사독재정권은 자신들의 정당성 및 이익 확보를 위해 법을 입맞에 맞게 재단하고 악용했다. 현재에도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정의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은 너무나 많다. 가령 법원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괴랄한 용어를 사용하며 성폭력 피해자들의 구제와 사후 지원을 가로막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은 줏대 없는 법원의 판결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 법 자체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권자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법을 만들고 실현하는 주체인 우리, '사람'이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지 않은가. 좀더 많은 사람이 함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누군가의 목을 옥죄는 것이 아닌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법, 아니 그 이전에 우리의 치열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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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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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날리는 한병철의 '레드카드', <고통 없는 사회>


 <피로사회>, <투명사회> 등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유명 저서들을 집필한 한병철 철학자의 신작이라는 소식에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분의 책들은 나의 '읽고 싶은 책' 목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엔 100여 쪽이라는 얇은 두께에 방심하고, 가볍게 읽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폈다. 그러나 정말 좋은 문장은 짧고 간결한 문장이라고 했던가. <고통 없는 사회> 또한 짧은 분량으로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끔 나의 두뇌를 자극했다. 100여 페이지를 읽으며 이렇게 많은 밑줄과 메모를 한 적은 처음이다. 하나하나 주옥같은 문장들 속에서 헤엄치며, 왜 이분이 현대 철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갈등론자'다. 갈등과 싸움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에 몸을 움츠리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은 사회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또 은폐되고 있는지 공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나와 다른 정체성과 생각을 가진 이들과의 지속적인 토론 즉 '건강한' 갈등을 통해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등과 평화가 반의어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나의 생각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이러한 나의 가려움을 <고통 없는 사회>가 시원하게 긁어 주었다. 우리 사회는 고통공포로 점철되어 있다. 고통은 즉 부정(否定)이며, 삶의 목표는 안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특히 신자유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자유로우라'고 명령하며 '할 수 있다' 신화를 유포한다. 모든 성과를 개인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회에서 '노오력'을 통해 성과를 내고 고통을 제거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나아가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는 생존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우리는 '안전'을 명목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옥죄는 것을 당연시한다. 28쪽에서 '"홈오피스"는 팬데믹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강제노동수용소'라고 언급한 것이 큰 충격이었던 이유다-집은 안전하니까 집에서 일하는 것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안일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이렇게 진통사회에서 자기착취는 합리화되며, 구조는 지워지고 개인만 남는다.


 빛과 그림자가 병존하듯, 행복 또한 고통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허술한 지우개로 고통이라는 그림자를 벅벅 닦아내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겪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이 사회는 알려주지 않는다. '좋아요'가 아닌 '싫어요' '아파요'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사회, 하트가 아닌 다른 반응을 두려워하는 사회,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닌 '힐링'과 '소확행'으로 가짜 행복을 사는 사회에서 진정한 해독제는 평안이 아닌 고통이다.


 애초에 우리는 고통을 인지하도록 설계되어 태어났다. 뜨거운 주전자를 만지면 급히 손을 떼게 되고, 내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는 짜증이 난다. 그러나 고통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고통을 느끼는 나라는 존재가 여기 이 땅을 밟고 서 있음을 확인하는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저자가 정신이 곧 고통이며 삶이라고 할 정도이다. 자신만의 온실에서 비슷한 사람들과의 사교만을 즐기고 있던 자들에게 <고통 없는 사회>는 경고를 날리는 레드카드다. 당신의 생각에 불을 지펴줄 효과적인 불쏘시개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안정만을 추구하던 당신의 안일함에 칼집을 내고, 책 표지처럼 붉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라. 그 순간, 당신은 고통이야말로 죽음이 아닌 삶을 가져다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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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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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현존하는 폭력의 회색빛 고발장 <지문>


 K-스릴러를 표방하며 등장한 <지문>. 김영사 SNS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다. 성폭력, 가정폭력, 학대 등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는 사건을 단순한 추리 소설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변사자는 여자였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 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이 책의 장르는 소설이지만, 담은 내용은 결코 허구가 아님을 나에게 각인시키는 듯했다. 작가 또한 <작가의 말>에서 책에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을 반영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여성들이 차별과 혐오로 점철된 폭력으로 인해 스러져 간다. 그중 세상에 드러나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얻는 죽음은 얼마나 되는가. 얼마나 많은 죽음, 죽음과도 같은 삶이 잊혀지고 있는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현실에 마음 한쪽이 콱 막힌 느낌이었다.


 교수와 학생, 아버지와 딸, 유지(有志)와 주민 간 비대칭적 권력 관계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위신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며 무관심과 권력으로 타인의 입을 막으려 하고, 피해자는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암흑 속에서 헤매다가 결국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이러한 그들에게 어떻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단순히 선과 악의 평면적인 구도를 넘어, 구조적으로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고 은폐되는지에 대한 폭넓은 과정을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달하기에 더욱 가치 있는 책이다. 여기서 '인간 쓰레기' '인면수심' '악마' 등의 단어는 유효하지 않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방관자 그리고 이를 묵인하는 권력과 구조의 합작품임을, 책을 읽으며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감각적이며 스산한 느낌을 주는 표지는 책을 펼칠 때 괜히 더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갖게 했고, 빠른 전개 덕분에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증오와 사랑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각기 다른 지문이 새겨진 우리의 손은 누구를 보듬고 누구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지문>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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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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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여성에게 거칠게 쓴 러브레터, <컨페션>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은 여성들에게 바치는 나의 러브레터입니다." 작가 제시 버튼의 말 한 마디에 반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는 '여성의 삶과 인생관을 가장 우아하게 그려내는 작가'라는 평을 받을 만큼 여성의 이야기를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러브레터'라는 단어의 유순하고 부드러운 어감에 속지 말라. 때론 지치고 갈등하면서도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그만두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를 당신은 숨가쁜 호흡으로 따라가게 될 것이다.


 최근 여성 서사가 하나가 트렌드가 되었다. 남성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가, 이제 여성이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유행에 그치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이러한 점에서, <컨페션>은 여성이 이야기의 0에서 100까지 멱살 잡고 끌고 가며 트렌드가 정형으로 자리잡는 데 일조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책 표지부터 예술이다. 푸른 나뭇잎 사이 토끼 한 마리,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꽃 그리고 한 여자. 과연 앞서 걸어가고 있는 자는 누구이며, 그를 뒤쫓아가는 토끼는 누구일지, 그리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Confession(고백)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지 궁금하신 분들은 망설이지 말고 책을 펼쳐 보시길.


 여성의 의무라고 여겨져 온 출산과 육아, 그리고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을 마냥 아름답게 그리지 않아서 더 와닿는다. '여성'의 이야기라는 이유로 늘 따뜻하게 그려진 기존의 서사들이 질린 사람이라면 더더욱 읽어볼 만하다. 차가운 음식과 따뜻한 음식을 번갈아 먹었을 때 배가 아파오듯, 롤러코스터를 타면 속이 울렁거리듯, 때론 웃고 때로 울며 '단짠단짠'의 이야기에 함께 빠져 보자.

 

 장장 500페이지에 걸친 길고 긴 이야기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각기 다른 시간을 오가며 '나'를 찾아가는 여성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을 당신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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