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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법정에 선 법
김희수 지음 / 김영사 / 2021년 6월
평점 :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우리를 심판하는 법을 심판대에 세우다: <역사의 법정에 선 법>
유전무죄 무전유죄, N번방을 비롯한 성착취 사건 등 부정의가 판칠 때마다 사람들은 사법부의 판결을 비판하고 법의 개정 또는 제정을 촉구한다. 도대체 법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법의 정의'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일까?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법 그 자체일까, 법의 변화를 기점으로 한 사회 전반의 변화인 것일까? 이 책은 동학농민혁명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을 법의 렌즈로 바라보며 법에 대한 관점을 확장해 준다.
역사 교과서에서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배우는 것이, 실은 2004년 이미 그 정식 명칭이 법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으로 규정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인간 존엄성을 기치로 내세우며 자유와 평등,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쳤다. 민중이 직접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여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투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혁명이라는 용어가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기존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민중이라는 햇빛을 손바닥으로 가려보려는 기득권의 마지막 발악이 아닐까. 3.1 혁명, 4.19 혁명, 촛불혁명 등 민주화를 위한 뜨거운 움직임들에 대한 용어 선정을 사회적으로 다시 논의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또한 법이 정의와 등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법이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규정하는 장치로 이용된 경우가 허다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신분에 따른 차별은 법적으로 당연했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야' 비로소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서구에서도 '우월한' 백인이 '열등한'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여성은 시민 혁명의 주축으로 큰 역할을 하더라도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여성을 제약하는 것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욱 이성적이기 때문에' 법적인 순리였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신자유주의의 채찍질은 자들이 삶을 위해 삶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 모순적인 상황을 법을 통해 정당화한다. 이는 모두 사람답게 살 권리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사회에서 만들어진 비합리적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왜 법을 거스르냐'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왜 이제 와서 예민하게 문제를 제기하느냐'라는 조롱 섞인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표방하는 법의 이름으로 비합리와 불공정을 자행하는 인권 감수성 0점 사회에 계속 제동을 거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독립운동이 테러인지에 대한 일각의 궁금증 또한 저자는 법의 논리로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병탄 당시 한국과 일본이 맺은 조약이 무효하기에 일제강점기 당시의 법을 기준으로 독립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초에 부당하게 한국의 주권을 빼앗은 것은 일본인데, 왜 안중근과 윤봉길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의거에만 법적인 올바름을 요구하는 것일까. 주권을 빼앗긴 가장 긴급한 상황에서 법적인 정당성을 운운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법의 형식을 중시한 나머지 실질적인 내용의 합리성에는 눈을 감는 무지한 태도는 이제 버릴 떄도 되지 않았는가?
이후에도 사사오입 개헌, 유신 헌법, 계엄령 등을 통해 군사독재정권은 자신들의 정당성 및 이익 확보를 위해 법을 입맞에 맞게 재단하고 악용했다. 현재에도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정의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은 너무나 많다. 가령 법원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괴랄한 용어를 사용하며 성폭력 피해자들의 구제와 사후 지원을 가로막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은 줏대 없는 법원의 판결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 법 자체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권자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법을 만들고 실현하는 주체인 우리, '사람'이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지 않은가. 좀더 많은 사람이 함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누군가의 목을 옥죄는 것이 아닌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법, 아니 그 이전에 우리의 치열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