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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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현존하는 폭력의 회색빛 고발장 <지문>


 K-스릴러를 표방하며 등장한 <지문>. 김영사 SNS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다. 성폭력, 가정폭력, 학대 등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는 사건을 단순한 추리 소설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변사자는 여자였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 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이 책의 장르는 소설이지만, 담은 내용은 결코 허구가 아님을 나에게 각인시키는 듯했다. 작가 또한 <작가의 말>에서 책에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을 반영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여성들이 차별과 혐오로 점철된 폭력으로 인해 스러져 간다. 그중 세상에 드러나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얻는 죽음은 얼마나 되는가. 얼마나 많은 죽음, 죽음과도 같은 삶이 잊혀지고 있는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현실에 마음 한쪽이 콱 막힌 느낌이었다.


 교수와 학생, 아버지와 딸, 유지(有志)와 주민 간 비대칭적 권력 관계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위신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며 무관심과 권력으로 타인의 입을 막으려 하고, 피해자는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암흑 속에서 헤매다가 결국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이러한 그들에게 어떻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단순히 선과 악의 평면적인 구도를 넘어, 구조적으로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고 은폐되는지에 대한 폭넓은 과정을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달하기에 더욱 가치 있는 책이다. 여기서 '인간 쓰레기' '인면수심' '악마' 등의 단어는 유효하지 않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방관자 그리고 이를 묵인하는 권력과 구조의 합작품임을, 책을 읽으며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감각적이며 스산한 느낌을 주는 표지는 책을 펼칠 때 괜히 더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갖게 했고, 빠른 전개 덕분에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증오와 사랑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각기 다른 지문이 새겨진 우리의 손은 누구를 보듬고 누구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지문>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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