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날리는 한병철의 '레드카드', <고통 없는 사회>


 <피로사회>, <투명사회> 등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유명 저서들을 집필한 한병철 철학자의 신작이라는 소식에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분의 책들은 나의 '읽고 싶은 책' 목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엔 100여 쪽이라는 얇은 두께에 방심하고, 가볍게 읽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폈다. 그러나 정말 좋은 문장은 짧고 간결한 문장이라고 했던가. <고통 없는 사회> 또한 짧은 분량으로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끔 나의 두뇌를 자극했다. 100여 페이지를 읽으며 이렇게 많은 밑줄과 메모를 한 적은 처음이다. 하나하나 주옥같은 문장들 속에서 헤엄치며, 왜 이분이 현대 철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갈등론자'다. 갈등과 싸움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에 몸을 움츠리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은 사회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또 은폐되고 있는지 공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나와 다른 정체성과 생각을 가진 이들과의 지속적인 토론 즉 '건강한' 갈등을 통해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등과 평화가 반의어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나의 생각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이러한 나의 가려움을 <고통 없는 사회>가 시원하게 긁어 주었다. 우리 사회는 고통공포로 점철되어 있다. 고통은 즉 부정(否定)이며, 삶의 목표는 안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특히 신자유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자유로우라'고 명령하며 '할 수 있다' 신화를 유포한다. 모든 성과를 개인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회에서 '노오력'을 통해 성과를 내고 고통을 제거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나아가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는 생존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우리는 '안전'을 명목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옥죄는 것을 당연시한다. 28쪽에서 '"홈오피스"는 팬데믹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강제노동수용소'라고 언급한 것이 큰 충격이었던 이유다-집은 안전하니까 집에서 일하는 것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안일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이렇게 진통사회에서 자기착취는 합리화되며, 구조는 지워지고 개인만 남는다.


 빛과 그림자가 병존하듯, 행복 또한 고통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허술한 지우개로 고통이라는 그림자를 벅벅 닦아내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겪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이 사회는 알려주지 않는다. '좋아요'가 아닌 '싫어요' '아파요'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사회, 하트가 아닌 다른 반응을 두려워하는 사회,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닌 '힐링'과 '소확행'으로 가짜 행복을 사는 사회에서 진정한 해독제는 평안이 아닌 고통이다.


 애초에 우리는 고통을 인지하도록 설계되어 태어났다. 뜨거운 주전자를 만지면 급히 손을 떼게 되고, 내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는 짜증이 난다. 그러나 고통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고통을 느끼는 나라는 존재가 여기 이 땅을 밟고 서 있음을 확인하는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저자가 정신이 곧 고통이며 삶이라고 할 정도이다. 자신만의 온실에서 비슷한 사람들과의 사교만을 즐기고 있던 자들에게 <고통 없는 사회>는 경고를 날리는 레드카드다. 당신의 생각에 불을 지펴줄 효과적인 불쏘시개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안정만을 추구하던 당신의 안일함에 칼집을 내고, 책 표지처럼 붉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라. 그 순간, 당신은 고통이야말로 죽음이 아닌 삶을 가져다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