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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해방의 괴물 - 팬데믹, 종말,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철학적 사유
김형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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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이 판치는 세상, 누가 진짜 '좀비'일까


좀비물을 무척 싫어한다. 평소 스릴러 장르를 무서워하기도 하고, 피로 범벅이 된 괴기한 모습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파괴된 듯한 야만적인 몸부림을 계속 지켜보아야 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현실을 갉아먹는 진짜 좀비는 누구인지 묻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3년째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 끝나면 조만간 보자(p10)"라는 말은 내일모레가 아닌 예상할 수 없는 먼 순간을 기약하는 말이 되었고, 방역의 최전선에서 일상의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에게는 영웅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그러나 저자는 충격적이게도 이들을 영웅으로 호명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평소에는 찬사받지 않던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극한의 재난 상황에서만 영웅으로 부상하는 게 정말 그들을 위한 것인지 고민하던 나였기에 그의 말은 신선하면서도 반가웠다. 그는 최소한의 생존만을 유지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일상을 '지키는' 것을 넘어 문제를 제기하고 깨부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자는 왜 좀비를 책의 전면에 내세운 것일까. 그는 좀비가 종말의 원인이 아닌 결과(p16)라고 말한다. 좀비가 있기 전에 이미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일상'이 사실은 수많은 재난들의 집합체였고, 그것이 가시를 키우고 늘려 일상 밖으로 빠져나와 재난의 모습으로 발현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코로나19는 재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p17)라고 그는 지적한다. 세계화에 따른 교류의 활성화와 기후위기 등의 현실이 산재했음에도 인류는 이를 무시하고 눈앞의 편의만 좇았고, 그에 따라 전세계적 감염병의 도래는 당연한 수순이다.


저자는 종말 이후의 세계는 사후 세계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모두가 사라진 이후의 세상을 그 누가 경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단지 이를 이유로 종말 자체에 대한 사유를 멈추는 것을 그는 경계한다. 그는 인류가 자연적 종말과 반(反)자연적 종말을 경계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한 끝없는 고민을 강조한다. 좀비가 타자가 아닌 자신이 되어버린 지금, '평범한 재난'들에 눈을 뜨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때이다. 


#좀비해방의괴물 #김형식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3기_좀비해방의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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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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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반의어들 사이 정지와 진전을 멈추지 않은 시인, 김수영


평소 시에는 약한 터라, 책을 펼치기 전 김수영 시인을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폭포>와 <풀>, 교과서에서 질리도록 읽은 그 시를 쓴 사람이구나! 일명 '네임드' 시인을 26가지 키워드로 탐독한다는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만 알았지 시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에, 오히려 새로웠다. 


1. 일본어와 반(反)민족


"식민지 시대 때도 일본어로 제국을 겨냥했던 김사량이 있었고, 지금도 일본어로 부조리한 역사를 기록하는 디아스포라 작가 김시종, 김석범, 양석일 등이 있다.(p41)"


그에게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익숙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 또는 반민족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성급하다는 김응교 시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너무나 납작하고 단편적인 민족과 민중의 개념으로는 그 어떤 부조리에도 제대로 맞설 수 없다. 한국어를 사용했지만 제국주의에 편승한 친일파 또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우리 언어를 잃은 식민지라는 암흑기에 자신만의 언어와 문체로 문제의식을 표출한 것이야말로 김수영 시인의 특징 아닐까.


2. 시민과 시인의 자유


""김일성만세"/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 - <"김일성만세"> (p146)"


해방은 되었으나 시민의 자유는 파괴되던 1960년, 김수영은 시를 통해 불온사상의 인정이 언론 자유의 시작임을 피력한다. 시의 제목에 큰따옴표를 붙여 누군가의 사상을 인용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그는, 그 어떤 사상이든 사회적으로 토론될 가치가 있다면 자유롭고 당당하게 인용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시민으로서 자유로워야 시인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기에.


3. 여성혐오


그러나 이 책은 한국 문학사에 김수영이 남긴 업적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책은 시대적, 구조적, 개인적 한계로 인해 '꼰대' 기질과 여성혐오적 언어 사용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음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다만 김수영이 '여편네' 등의 단어를 사용한 연유는 단지 자신의 아내를 가리키는 것을 넘어 타자의 호명을 통한 자기 혐오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이어 이경수 문학평론가는 김수영의 시를 여성혐오적이라고 비판하는 현실은 과연 이전과 다른지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김수영을 통해 한국 시단의 한계 나아가 구조적 차별이 잔존하는 사회 자체를 직시할 시점이다.


4. 풀과 민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김수영의 생전 마지막 작품인 <풀>을 조명한 마지막 챕터이다. 학교에서 바람은 억압을, 풀은 굴복하지 않는 민중을 의미한다고 배우고 외웠다. 그러나 책은 세계를 여는 힘으로서 바람을 새롭게 해석한다. 처음에는 바람 때문에 풀이 눕지만, 이것이 반복되며 풀은 바람 덕분에 눕고 스스로의 속도를 찾아간다. 천편일률적인 해석을 넘어 시와 시어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고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5. 더러운 역사와 영원한 사랑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 <거대한 뿌리> (p122)"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구절이 포함된 <거대한 뿌리>에서는 질척한 전통에서 낯선 새로움을 캐내려는 시인의 노력이 엿보인다. 정제되지 않고 거친 그의 필적 사이에서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독재 정권까지 이어지는 시대의 그림자를,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평등의 해답을 찾아가는 민중의 빛을 찾을 수 있다.


#이모든무수한반동이좋다 #고봉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3기_이모든무수한반동이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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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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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인간다운' 길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회에서 규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정해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도 교육의 가장 충실한 학생으로서 공부에 정진, 모두가 공인한 '좋은' 대학을 나와 모두가 알아주는 대기업에 '취뽀'하거나 공무원이 되어 사회적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궤도에 오르지 않은 이에게 사회는 그 어떤 조명 하나 비추지 않고, '이탈자'들의 존재는 무한히 축소된다. 은유는 그렇게 작아져 버린 이들 하나하나를 찾아가 그들의 서사를 발굴한다. 그렇게 책에 실린 18명의 인물들은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사유를 자극하고, 살아가는 일 자체로 모두의 해방에 기여한다(p7~8)'.


홍은전 인권기록활동가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임용고시에서 탈피,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차별을 저항으로 만드는(p20) 과정에 함께한다. 청년 노동자 故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은 비록 아들을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자(p104) 산재공화국에서 '김용균들'을 구하는 투사가 되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자신을 무자비하게 그냥 살려두는(p206) 기업의 횡포에 맞서 땅과 하늘을 오가며 정리해고 반대투쟁, 복직투쟁 등을 이끌었다.


정해진 열차에 탑승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개척, 그렇게 획일화된 사회에 다양한 인생의 가능성을 설파하는 다양한 이들의 존재 앞에 더욱 큰 망원경과 선명한 돋보기가 놓이길 바란다. 이 책을 시작으로,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료로 더욱 인간다운 자신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크게그린사람 #은유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3기_크게그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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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서울 지망생입니다 - ‘나만의 온탕’ 같은 안락한 소도시를 선택한 새내기 지방러 14명의 조언
김미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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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만 치환되지 않는 삶을 꿈꾸며, 환상이 아닌 현실로서의 '탈서울'을 택하는 사람들


 서울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된 지금이다. 모두가 대한민국 면적의 1%도 채 되지 않는 서울에 진입하고자 태어날 때부터 무한한 경쟁에 시달린다. 많은 이들이 평생의 꿈을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갖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를 위해 '잠만 자는(p23)' 좁은 원룸에서의 숨막힘을 견디며 살아간다. 서울을 떠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우며, 탈서울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귀농과 낭만에 그쳐 있다. 그렇다면 탈서울의 꿈은 불꽃 튀는 젊은 날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꿈일까. 탈서울은 할머니가 되어서(p42)만 이룰 수 있는 꿈일까. 서울에서의 삶이 최고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일까.


"내가 서울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벗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그런 유의 낭만이 아니었다. 그저 현실에서의 합리적 선택에 가까웠다." (p45)

"적어도 나에게 서울이란 대도시는 유통기한이 진즉 끝나 있었다. 요구르트로 치자면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물론 상하기까지 해서 쩔쩔매는 상황 같았다… 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버릴 때의 수고로움이 감당이 되지 않아서 내버려둔 처치 곤란 요구르트. 그것이 나에게는 서울 생활이었다." (p44)


 저자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지만 내가 자리할 곳이 너무나도 좁은 서울의서의 삶과, 넓고 쾌적하지만 사회 기반 시설이 미비한 농어촌에서의 삶을 '온탕'과 '냉탕'에 비유한다. 그 어떤 이도 불날 듯 뜨거운 온탕에만 혹은 당장이라도 얼어버릴 듯한 냉탕에만 몸을 누이지는 않는다. 적당히 따뜻하고 또 시원한 탕을 찾아 저자는 '탈서울'이라는 대안을 찾아 나선다.


 저자의 경험과 더불어, 탈서울을 결심한 이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활자로 만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이유로 서울을 떠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편리함이 서울이라는 단어로 치환되는 지금, 서울 아닌 다른 지역들도 살아 숨쉬고(p309) 탈서울이 환상이 아닌 합리적인 대안으로 많은 이들에게 제시되길 바란다.


#탈서울지망생입니다 #김미향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3기_탈서울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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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 - 암을 지나며 배운 삶과 사랑의 방식
양선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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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처로 너를 보듬을 약을 만드는 것


 이 책은 누구보다 밝고 에너지 넘쳤던 저자가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 느낀 불안감을 넘어 삶의 원리를 깨닫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써내려간 다채로운 서사를 저자만의 문체로 풀어낸다.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암이 본인을 찾아왔을 때 느낀 당혹감, 이제 내 인생은 끝이라는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삶에서 건져낸 다양한 감정들이 가감 없이 드러나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암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라는 낯빛으로 두 눈 크게 뜬 등장인물의 충격 받은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렇게 암의 공포스러운 이미지는 무한히 재생산된다. 그러나 실제로 암 진단을 받은 이들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세심하게 알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책은 <한겨레>에 연재된 '양선아의 암&앎'에 대한 독자들의 성원과 지지로 완성된 만큼, 암을 겪지 않은 이들에게는 고통이자 일상으로서의 암을 새롭게 보게 하고 암 환자들에게는 '나도 여기 있다'는 따뜻한 연대의 손을 건넨다. 환자들을 위한 실용적인 팁 또한 주목할 만하다.


"재발과 전이에 대한 불안으로 마음이 출렁일 때마다 저는 항상 '나'로 돌아갑니다. 나와 연대하는 것이지요. 내 느낌과 감정, 생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 등에 대해 집중하면서 나를 더 탐구해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자'하고 생각해버립니다. 힘내지 않고 오히려 힘을 쫙 빼는 것이죠. 그동안 저는 너무 힘만 내고 살아온 것 같아요. 이제는 힘을 내기보다 '빼는 기술'을 익히고 싶어요." (p237)


 암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행복과 고통을 공유하며 삶의 서사를 더욱 다채롭게 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끝장난줄알았는데인생은계속됐다 #양선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3기_끝장난줄알았는데인생은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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