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지지 않는다는 말 (개정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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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군가를 이기지 않는다면, 결국 패배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이 패배자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 내게 스포츠란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기만 했다.
과연 이기지 않는 것은 패배를 뜻하는 것일까?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그러니 우리 사이를 유지하는 건 막힘이 없는 소통이 아니라 그저 행위들, 말하는 행위, 그리고 듣는 행위들일지도 모른다.
2019-04-30 ④ 08:0223%

지금은 이제 슬픈 맛 다 알기에말하려다 그만둔다.
말하려다 그만두고아! 서늘해서 좋은 가을이어라 했지요.
2019-04-30 ④ 21:3423%
송사(宋詞) 而今識盡秘滋味欲說還休欲說還休却道天凉好個秋

혼자서 별을 바라본다는 건, 단순히 별을 관찰하는 일과는 다르다. 그건 고독을 인정하는 일, 혹은 자기 안의 어둠을 직시하는 일이다.2019-04-30 ④ 23:2825%

밝은 신도시의 밤에는 내가 고독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제 고독은 부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감정이 됐다. 내가 경험한 가장 비싼 고독은 고비사막에서 보내던 여러 밤에 겪었다. 거기 사막에는 밤이 환했다. 달은 해처럼 환했고, 별빛은 달빛처럼 은은했다. 누군가 랜턴의 불을 밝혔다가 끄면 비로소 어둠이 잠시 찾아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처럼 캠프가 있었고, 나는 그 캠프에 설치한 게르에서 혼자 잠들었다. 문을 열고 게르로 들어가면 완벽한 어둠이, 다시 문을 열고 나오면 당장이라도 밤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닐까는 걱정이 들 정도로 너무 많이 매달린 별들이 있었다. 나는 캠프 사무소 앞 벤치에 누워서 밤새 그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결엔가 이 우주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그 순간 나는 고독을 경험했다.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고독은 뭐랄까,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나는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 됐다. 마흔 살이 된다는 건 우리의 부모 세대가 돌아가시는 연배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평생 철들지 않고 애처럼 살 것 같았는데 이제 우리 또래는 하나둘 고아들이 되어 갈 것이다. 어떤 고아들도 철부지로 살지는 못한다. 마흔 살이된다는 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나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더 이상 "그따위는 모르고 살아도 아무 상관없어!"라고 소리칠 수 없게 됐다 2019-04-30 ④ 23:3228%

자연이라는 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때로 그건 너무 잔인하다. 어떤 일을 두고 누군가 "자연스러운 일이지"라고 말한다면, 그게 잔인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2019-04-30 ④ 23:35 31%


그러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해서 하기 싫은 일을 반드시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으니까 하기 싫은 일은 더구나 하지 말아야지. 2019-04-30 ④ 23:4345%

어쨌든 시간만 지나면 누구나 늘어나는 나이가 아니라 그가 한 행동들로 그 사람을 구별짓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남들보다 몇 년 더 살았다는 게대단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는 헤드폰을 끼고 배낭을 맨 채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가던 노인을 본 일이 있었다. 잘 타더라. 리스본에서는 젊은 연인들 옆에 혼자 앉아서 우아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백발의 할머니도 봤다. 오래산 사람과 그보다 덜 산 사람이 서로 뒤엉켜 살아가되 오래 산 사람은 덜 산 사람처럼 호기심이 많고, 덜 산 사람은 오래 산 사람처럼 사려 깊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음, 그렇다면 나는 더욱더 아저씨들을 피해 젊은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다녀야만 한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나, 안 되나. 말이 되든 안 되든, 아무튼.
2019-05-01 ④ 00:1857%


요즘 들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영영.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그때 그러고 보면 박경리 선생의 상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분의 어떤 일들을 추억하는 사람들이었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2019-05-01 ④ 00:1968%


왜 항상 돌아보면 삶은 그제야 그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일까?

기회의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어 지나가고 나면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마음에 드는 말이다. 안 잡히려고 뒤통수에만 머리카락을 잘라 낸기회를 상상하면 비록 그 기회를 놓쳤더라도 어느 정도 위안이 된다. 나 같으면 잡히는 한이 있어도 머리카락을 기르겠다. 기회의 친한 친구가 바로 인생이다. 인생의 뒤통수에도 머리카락은 없을 듯. 대신에 그 뒤통수에는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씌어져 있을 것 같다. 멀리서 돌아봐도 금방알아볼 수 있게 큰 글자로. "기회야, 인생아, 나는 늘 늦게 깨닫지만, 그래서 후회도 많이 하지만, 가끔은 너희들의 뒤통수를 보며 웃기도 한단다. 안 잡을게. 그러니 뒤통수에 머리 길러도 괜찮아."
2019-05-01 ④ 00:21170%


왜 20대에는 제대로 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모든 게 갑자기 부질없어 보이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20대에는 결과는 없고 원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고 생각하고, 그때 제대로 산다고 본다. 우리가 자꾸만 어떤 결과를 원하는 건 그 때문이다. 회사원은 사장을 원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결혼을 원한다. 정말 멋진 사람,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자기계발서에 써 놓은 것처럼,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원하지 않고 20대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럼에도 20대가 끝날 무렵에 우리 대부분은 알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지질하며, 자주 남들에게 무시당하며, 돌아보면 사랑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을.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모든 게 다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결과를 얻는 것일까? 그러니 20대 후반이 되면 우리는 모두 샐리처럼 울 수밖에 없다. 그건 아마도 20대란 씨 뿌리는 시기이지 거두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청춘이라는 단어에 ‘봄‘의 뜻이들어가는 건 그 때문이겠지. 20대에 우리가 원할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뿐이니까2019-05-01 ④ 00:2271%


20대에 우리가 원할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대에 나는 세상에서 글을 제일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이 되어서 나는 내가 그다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 깨달음이 얼마나통렬하던지 나 역시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스무 살이 되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이라는 건 정말 끔찍했어요"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건 스무 살의 잘못이 아니다. 우주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20대에 우리는 무엇을 원해야만 하는지를 몰랐을 뿐이다.
20대가 지난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건 정말 어렵지만,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매일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쓴 최고의 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최고의 작가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최고의 글을 썼다. 2019-05-01 ④ 00:2471%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결혼이아니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해야만 할 것이다. 결혼은 어려울 수 있지만, 아낌없이 사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그건 내 쪽에 달린 문제니까. 마찬가지로 마라톤 완주가 아니라 매일 달리기를 원해야만 한다. 마라톤을 완주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달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설명하기무척 힘들지만, 경험상 나는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
2019-05-01 ④ 00:24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일들이 그때부터 내 주위에서 많이 일어났다. 열심히 운동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정상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굉장히 많다. 또 착한 사람들보다 나쁜 사람들, 모두들 싫어하는 정말 나쁜 사람들이 더오래, 그리고 잘산다. 굳이 말하자면 그런 식의 일이었다. 인생은 가끔씩 그렇게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불합리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2019-05-01 0 00:2991%

바다는 이미 젖어 있었다. 이미 젖어 있는 것은 비에 젖지 않는다. 이미 쓰러진 자를 누가 쓰러뜨릴 수 있으리오 2019-05-01 ④ 00:31100%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저마다 위대했다.
2019-04-29 ④ 23:56 100%


나뭇잎을 떨어뜨린 나무들도,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호수의 물결도, 조금씩 밝아 오는 하늘도, 어쩌면 모두 신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9-04-29 ④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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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언어의 온도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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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깊이가 있길 바랐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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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언어의 온도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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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總量에 관해 고민한다. 다언多言이 실언失言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거리에서 혹은 카페에서 "그냥…" 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청아하게 들려올 때가 많다. 퇴근길에부모는 "그냥 걸었다"는 말로 자식에게 전화를 걸고 연인들은 서로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라 며 사랑을 전한다.
"그냥" 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역시 사랑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뒷맛이 씁쓸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염치廉恥를 잃어버린 것 같다.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쳐 놓고 그냥 내빼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버스나 기차에서 1시간 가까이 목소리 데시벨을 최대치로 높여 통화하는 사람도 자주 보게 된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할까. 염치가 사치가 됐다고 할까.
염치는 본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염치가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이 참 많은 듯하다.

가 있다. 절정보다 더 아름다운 건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송나라 때 시인 소옹은 이러한 이치를 멋들어지게 노래했다.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 예쁜 꽃 보노라, 반쯤 피었을 때."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린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어쩌면 계절도, 감정도, 인연이란 것도 죄다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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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이 드는 맛
존 릴런드 지음, 최인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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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드는 맛일까 나이드는 체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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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이 드는 맛
존 릴런드 지음, 최인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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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의 4분의 1을 공부하면서 보냈어. 그 후 인생의 절반은 열심히 일만 했지. 그러고는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쓸모없는 사람이 돼서 나머지 25년을 보내는 거야. 쓸데없이밥만 축내는 거지. 난 사회가 나서서 노인이 할 일을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해."
어쩌면 어르신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때가 이미 와 있는지도 몰랐다. 온 사방에 배울 것이 널려 있고, 지금 우리 주변에는 6백만 명에 달하는 스승들이 있다.

. "어렸을 때는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부모님이 계시고,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신다면 행복해. 왜냐하면 아는 건 그게 전부니까." 프레드가 말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열일곱인가 열여덟 살 때까지도 우리가 가난한지 몰랐어. 록펠러가나케네디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나오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야. 크리스마스에 장난감도 받았고 입을 옷도 있었으니까. 그땐 가게에서 전날 만든 도넛 여섯 개들이 한 상자를 10센트에 살 수 있었지. 난 그걸 점심으로 먹었어." 그 경험들 덕분에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이 무언가를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진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일 뿐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스스로가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고, 선택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노년에 닥쳐 모 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초고령자들 중 아무도 자신이 직업적으로 성취한 것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하느라 보내고, 일에 집착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 일과 관련해 그리워하는 것은 일터에서느꼈던 동료애가 전부였고, 은퇴했다는 사실에는 크게 기뻐했다.

과연 그는 오래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래 죽어가는 것일까?

서로 의지하려면 균형을 잡아야 한다. 자녀들은 본인의 삶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어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들은 어머니가 안전하게, 최대한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갈 수있기를 바랐다. 루스는 홀로서기를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자녀들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녀는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엄마를 위해 기꺼이 나서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도 했다. 지나친것과 충분한 것 사이의 경계는 미묘했고 늘 변화무쌍했다.

그는 오래 살아 나쁜 점은 매년 그가 살아온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요나스는 자신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 생각이 제일 나쁘다고 말했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에 따라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소련에 점령당한 리투아니아와 나치하의 독일에서 똑똑히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온전히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려고 애썼다. 아침이면 아무 계획 없이 일어나서 눈에 띄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고 그저 자연스럽게 장면이 나오도록 내 버려뒀다. "나는 사색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야. 농장에서 자라서 시골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자신을 분석하지 않아. 그냥 사는 거지. 단체 생활에 가까워. 그냥 있는 그대로 친구들이나 이웃들과 함께 사는 거야. 물론 그 후에 커서 시골을 떠나면서 자기 분석이나 자아 성찰도 하게 됐지만 여전히 천성적으로 나는 나를 뜯어보지 않아. 영상이나 글에서 일기를 쓰다시피 하지만 말이 야. 자기중심적이지. 하지만 아나이스 닌(Anais Nin)과 헨리 밀러(Henry Miller)의 일기를 읽어보면 정말 사색적이고 난해해.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내 일기는 그렇게 개인적이지가 않아."
이런 식의 삶은 오히려 유난히 확고한 목표 의식과 방향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행동이 하찮은 잡음이 되어버리고 만다. 요나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단순했고, 한결같았다. 그는 음악과 자연 그리고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예술과 아름다움을 추함과 실존적 절망보다 사랑했다.

야 했으니까. 노동자라는 개념은 소련이 들어와서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같이 들어왔어.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이 노동자가 됐어. 하지만 그 전까지 우리는 노동자들이 아니었지. 그래서 나는 자라면서 하던 것들을 계속하는 거야.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
또 어떤 날은 이렇게 말했다. "농부들은 여러 가지를 길러. 나는 시와 성자들, 역사, 아름다움,
예술을 길러. 나는 그것들을 고른 거야."

그가 지루한 늙은이들과 같이 다니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지루해서이지 늙어서가 아니었 .

요나스처럼 사람들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해주는 생명력을 ‘목적‘이라고 불렀다. 연구원들은 삶에서 목적의식을 느끼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더 충실하고 보다 건강하게 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확인해왔다. 그다지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인생이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아마도 노인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이런 걸까. 나는 온전히그 순간만을 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미래를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미래에 끝이있는 것처럼 산다면 현재가 훨씬 더 경이로워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데도, 그들은 계속해서 감탄했다. 소소한 기쁨은 더 이상 소소하지 않았고, 감탄하는 것 역시 마음먹기에 달려있었다. 핑은 사람들과 마작을 하며 감탄했고 프레드는- 매일 아침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헬렌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아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존은 아름다운 음악을 발견했다. 루스는 천사와 같은 자신의 자녀들을 믿는 법을 배웠다.
한 해 동안, 나는 고령자들 모두에게 죽음을 생각해보았는지, 두렵지는 않은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프레드 존스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살까 봐두렵다고 했다. 그러니 죽음은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죽음과 노화를 인생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고령자들에게서 배운 것 중 하나다. 오직 젊은이들만 죽음이나 노화를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요나스의 소설 『수동 타자기를 위한 진혼곡』은 주인공이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끝이 났다. "그래서 그도 사라졌구나." 요나스가 마지막 문장을읽었다. 나중에 그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냐고 묻자 그는 죽음에 대해 묻는 건 잘못된 질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삶이었다. "죽음은 올 때가 되면 올 거야. 하지만 나는 절대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그가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주어진 삶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는 라디오, 전기, 텔레비전, 음악 심지어는 사진도 없이 자랐어. 영화는 열네 살에 처음으로 봤고, 어쩌면 200살까지 사는 사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스무 살이 된 젊은이들중에 벌써부터 삶을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있어. 결국 못 버티는 사람들도 있고, 그건 또 다른 얘기야."

. "나는 내 하루하루에 ‘나비 효과‘ 가있다고 믿어. 일종의 도덕적인 격언 같은 거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다음 순간에 영향을 미친다. 는 것을 명심하기 위한 도덕적 책임 말이야. 그래서 나는 나쁜 짓은 뭐든 안 하려고 해. 다음 순간에 이 세상은 더 좋아질 거라고, 적어도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제일 든든한 보험을 드는 거야. 하지만 물론 내가 좋은 일을 해도 다른 사람들의 백 가지 나쁜 짓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있어.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격언을 따르지. 그러니까 낙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어느 시점이 되면 여행도 실망스러워진다. 행복, 목적, 만족, 우정, 아름다움, 사랑과 같이 인생의 좋은 것들은 내내 그 자리에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특별히 뭔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좋은 음식, 친구, 예술, 따뜻함, 가치와 같은 것들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으니, 그저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기만 하면 된다.
분명 지금까지 배운 것들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인데도, 나는 아직 거기에 닿지 못했다. 때로는쉬운 일들도 정작 하려고 하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오랫동안 삶의 의미는 전력을 다해 싸우는 데 있으며 편안한 삶은 책임을 피하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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