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관계의 사랑 이야기라면 죽일놈의 한스이며 그에 대한 분노가 끓어 넘친다. 여기에 이해를 넘어서는 카타리나에 대한 의문도 솟구친다. 하지만 한스가 나치시대,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 시대의 함의 또는 그 시대에 혼란스러운 한 인생으로 느껴지는 순간 분노가 가라 앉고 생각이 깊게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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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대화체로 쓰지 않고 제 삼자의 관점으로 설명체도 써내려간 문체의 의도를 작가에게 묻고 싶어졌다.

한숨과 비탄의 자리에 고요가 깃들었을 때, 두 육체는 완전히 뻗은채 어둠 속에 나란히 누워 있다. 결코 다시는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한스는 생각한다. 영원히 이럴 거라고 카타리나는 생각한다. 그뒤 잠은 모든 생각을 지우고, 나란히 누워 새근새근 숨을 쉬는 동안,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뇌 피질에 새겨진다. - P35
순간 나무 부두에 다리를 늘어뜨린 채 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은 그녀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런 문장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가, 라고 그는 생각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의 머릿속에 이미지를 보내는 문장. - P39
지난 2주 동안 그녀는 그가 능숙하게 선보이는많은 것보다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약한 부분에서 더욱더 그에 대한 사랑이 커지는 듯한 느낌이다. - P74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또한 스스로에게 3주 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모든 일을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어떤 건 두 사람 다 알고 있고, 어떤 건 둘 중 한 사람이 잊어버렸으며, 어떤 건 둘 중 한 사람이 눈치채지 못했고, 어떤 건 둘 중 한 사람만 생각했지만 발설하지않았고, 그렇게 3주 전에 현재였던 것이 이 오후에 깊어지고, 변화하면서도 둘이 다시 알아볼 수 있는 윤곽으로 간직된다.
한스는 그 저녁에 단 한 가지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카타리나가부다페스트에 간 동안에 자신이 이 카페의 창문으로 지금 그들이 다시 앉은 이 테이블이 비어 있는 모습을 들여다봤다는 것만은. - P91
누군가의 냉장고를 들여다보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고 얼마 전 한스는 말했다. - P113
한스는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한다. 그리움이정말 아프다는 것을. 아픈 부위를 지정할 수 없을 뿐. 그 아픔은 고대그리스인들의 영혼이 살았던 횡격막에 있을까, 아니면 며칠 전부터자꾸 리듬을 벗어나는 심장에 있을까, 아니면 꺾여버린 듯한 호흡에있을까? - P118
철두철미하게 낯선 곳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일까? - P124
그게 결혼이라면, 뭐 하러 결혼을 해요? 카타리나가 어제 그에게물었다. 그는 결혼 없이는 그는 지금의 그가 아니다. 라고 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금세 눈물이 코를 타고 커피에 뚝뚝 떨어졌다.
이 결혼은 이제 선천적 결함처럼 그에게 들러붙어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P143
카타리나가 간혹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그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참고 있다는 걸 안다. 무슨 일 있어? 라고 물으면 아니요, 라고 한다. 상대를 슬프게 할지도 모르는 것을 피하다보면, 갑자기 슬픔이 그들 사이에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는이제 끝이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게, 그런 다음 점점 확고하게 현재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알 만큼 나이가 들었다. - P156
증거로 남는 종이의 독특한 속성, 속임수를 만들어내는 종이의 독특한 속성. 하나의 현실을 다른 현실에서 분리하는 속성, 현실의 위계질서를 만들어내는 속성. 사람이 종이 위에서 이런저런 것을 읽는 동안, 어떤 무인지대에서는 기록되지 않은 또 다른 진실이 계속 살아간다. 그 진실을 아는 하나의 뇌가 건망증이 생기거나 망가져도, 그 진실은 영원히 독자적인삶을 이어나간다. 베를린의 밤, 거짓말도 잘 만들어야 믿지, 라고 카타리나는 홀로 집에 앉아 생각한다.
힘없는 자들의 힘은 거짓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 P302
그녀 역시 편지와 편지 사본,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모아놓은 트렁크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것들은 기록 보관소 용어로 말하자면 평면 자료들이다. 일기장과 다이어리도 있다. 다음 날 그녀는 책 사다리에 올라가, 책장 맨 위 칸에서 안팎으로 먼지가 뽀얀 트렁크를 끄집어낸다. 오래전엔 그의 상자 속 종이들과 그녀의 트렁크 속 종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눴다. 이제 그 종이들은 시간과 대화를 한다. 끝과시작과 중간이 그렇게 트렁크와 상자 안 수십 년 묵은 먼지 속에 무심히 놓여 있다. 속이기 위해 쓴 것과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 말하지않은 것과 말한 것이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 포개어져 있다. 모순되는 것이 놓여 있고, 침묵에 붙여진 분노와 침묵에 붙여진 사랑이 서로 한 봉투에, 같은 철에 묶여 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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