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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미디어(특히 방송)는 저널리즘도 공공재도 아니며, 권력이 부여한 기득권(전파)에 몰려든 담합 조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고 만다. 그렇게 되었을 때, 미디어는 누군가가 자기가 좋아서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카메라 앞에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는 식의 공공성만을 갖게 된다.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는 유목민이어야 한다. 그들의 가장큰 역할은, 주민들이 사는 세상이 성숙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비평히는 것이다. 그것이 저널리즘이 서야 할 위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 P165
지금의 일본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일본인만으로 한정되는게 아니라)에게 가장 불행한 것은, 이 정신적 외부에 있어야 할미디어가 완전히 내부의 세상과 일체화되고 그 가치관에 영합해 오히려 마을의 외벽을 보강해버렸다는 사실이다. 국가적 가치관과 개인의 가치관, 그 이쪽과 저쪽에 대해 비평적인 입장으로 접근해 타자와의 접촉의 장을 여는 것으로 양자의 성숙(상대화)을 촉진함이 미디어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는미디어가 외부에 있지 않고 국가와 개인과 동심원상에 겹쳐있다. 이는 섬나라 근성의 삼중고다. 미디어는 정부의 홍보 도구이며(TV를 오래 보는 사람일수록 자민당 지지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원래라면 제4의 권력으로서 경찰 권력의 행사를 점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솔선해서 범인 색출에 협력하고 사법에 앞서 사회적(세간적) 제재를 가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내부 사람끼리 작은 차이를 찾아내 자기들끼리 서로 배제하는 ‘왕따‘가 난무한다. 학교가 - P167
바로 지금 그런 세상의 축소판이 되어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처해 있다. 넓은 세계는 높은 벽에 차단돼 볼 수 없고, 서로 감시하는 세간에만 둘러싸인 답답함에서 인간이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현재 자살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TV 방송이 보여줘야만 하는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영기나 수호령이나 전생 같은 것이 아니고, 세간 밖에 펼쳐진 저대초원이다(이를 공공성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리고 언론 종사자는 세간에서 분리된 그 초원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배양하는 자각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지금 정신적인 영역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언론 종사자들이 높은 월급을 받는다든가, 서민의 생활을 내려다보는듯 자사 빌딩을 높이 짓는다든가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세간의 가치관으로부터 언제든지 정신을 자유자재로 초원으로 날아오르게 할 자신이 있다면, 어떤 생활을 해도 딱히 상관없을 것이다......). 자신의 정신에 의지해 서서 발아래 놓인 초원을 볼 수만 있다면, 언론에 압력을 가하거나 ‘명령‘을 내리거나 으름장을 놓거나 하는 권력자에 대해서도, 또 세간의 가치관 그 자체인 시청률이라는 압력에 대해서도, 지금보다는 좀더 의연한 태도로 - P168
맞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유목민이다. 너와는 입장이 다르다. 왜냐하면 나는 존재 자체가 ‘안티테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치관이 다른 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자세는 아마도도시에서 ‘약간의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어렵고 고된 삶의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무리‘라고 포기했을 때 미디어(특히 방송)는 저널리즘도 공공재도 아니며, 권력이 부여한 기득권(전파)에 몰려든 담합 조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고 만다. 그렇게 되었을 때, 미디어는 누군가가 자기가 좋아서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카메라 앞에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는 식의 공공성만을 갖게 된다.
「아름다운 늑대」에서 대초원을 앞에 두고 유교수는 이렇게말한다. "그 바람은 어디에서 부는가, 구름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끝은 어디에 있는가, 가볼 수밖에 없다. 넘어도 넘어도 한이 없는 그 질문에 계속 등을 떠밀리는 것처럼." 교수가 있는 초원에 서서, 교수가 본 초원을 자신의 눈으로보았으면 한다. 과거 ‘세계‘의 주민이었던 사라진 유목민이 다시 그 초원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내부에 있는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초원의 존재를 미디어가 확실한 윤곽을 갖고 그려내 보일 때, 보이던 세간과 보이지 않았던 세계는 틀림없이 역전될 것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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