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인생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허우적거리는 몸짓이 인간의 슬픔이다.

답 없는 몸짓은 말 못할 슬픔을 부른다. 죽음처럼 슬픈 케테콜비츠Kathe Kollwitz, 1867~1945의 청동 작품 「애통, 자소상」을 보라. - P101

한 사람, 간신히 얼굴을 가려내는 손이 아프다. 눈물을 쏟고 싶지 않아서비명을 지르고 싶지 않아서, 얼굴을 가려 막아보려는 허우적거림이다. 눈물이 범벅된 얼굴이 차라리 낫겠다.

슬픔마저도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없는처절함이라니. 도무지 못 견디겠다. - P103

케테 콜비츠는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들을 잃었다. 콜비츠의둘째 아들 페터는 18세의 나이로 전사했고, 죽은 아들의 이름을 물려받은손자 페터도 28년 후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전사했다. 전쟁이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아들을 잃은 후, 분신처럼 사랑하던 손자까지 허망하게 잃어야 했다는 것은 어미에게 끔찍한 일이다. 남편 역시 집에 떨어진 포탄으로 목숨을 잃었으니, 그녀가 전쟁과 맞설 때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생각만해도 억장이 무너진다.


결국 항상 우는 것은 여자다. 긴 역사를 통틀어 전쟁은 늘 여자를 울렸다. 남자는 전쟁을 일으키고 남자를 데려가고 전장에서 사망해버리지만, 그들을 보내고 가슴을 졸여야 하는 쪽은 여자였으며, 남은 어린것들을 먹이려 험한 날들을 버텨야 하는 이도 여자였다. 적군의 파렴치한 노략에희생당해야 하는 이도 여자였고, 전사한 남자를 가슴에 품고 오열하는 이도 끝내 여자였다.
케테 콜비츠도 그런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예술가였다. 울지만은않았다. 언젠가는 말라버릴 눈물보다 더 오래갈 것을 남겨야만 했다. 이끔찍한 비극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고통이 콜비츠를 움직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다. 화가는 검은 눈물을 기록한다. 찢어지는 애통을 깊은 검정으로 절제한 그림과 판화, 떨리는 손자국이 확연한 소조가 화가의 탄식 같은 작품이다. - P104

슬픔은 거대한 것이다. 감히 평가할 수 없는 크기이며, 감히 참견할수 없는 깊이이며, 감히 조언할 수 없는 복잡함이며, 감히 직면하기 두려운 세상의 불합리함이다.

누군가의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것, 그 슬픔 곁에 그저 머무는 것, 그의 슬픔을 존중하는 것만이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최선이다.

(슬픔의 깊이가 끝없다는 것을 알수록 어른이 된다. 깊고 얕은 슬픔을 두루 겪어온 나는 이제 조금 어른의 모양새를 갖춰간다. 이제 누군가의슬픔에 "힘내!" 혹은 "힘내세요" 라고 섣불리 말할 수가 없다.)

자신의 슬픔을 알리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힘을 낼 만한 기력이 남았다면 슬픔을 분명 감출 수 있었을 터, 숨길 여력이 있다면 슬픔이 드러나지도 않을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 P162

사람의 마음이 모이면 권력이 된다.

(권력에는 돈도 따라온다. 밀레이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부를 얻었으며 사회적 지위도 얻었다.
「나의 첫 설교」와 「나의 두번째 설교」 연작은 밀레이의 그림 중에서도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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