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친숙한 예를 또 하나 들어보자.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이들 기계는 삶을 더 여유 있게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과거엔 편지를 쓰고 주소를 적고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가져가는 데 몇 날 몇 주가 걸렸다.
답장을 받는 데는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이 걸렸다. 요즘 나는이메일을 휘갈겨 쓰고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한 다음 몇 분 후에 답 장을 받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종이 우편물 시대에 편지를 쓸 때는 대개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뿐이었다. 머릿속에 처음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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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그리고 역시 그렇게 심사숙고한 답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주고받는 편지가 한 달에 몇 통 되지 않았으며 당장 답장을 해야 한다는 강요를받지도 않았다. 오늘날 나는 매일 열 통이 넘는 메일을 받고, 상대방은 모두 즉각적인 답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이메일 계정 만들기를 거부하는 신기술 반대론자도 드문드문 있기는 하다. 마치 수천 년 전 농경을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사치품 함정을 비켜갔던 일부 인간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농업혁명은 해당지역의 모든 무리의 동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동이나 중미 어느 지역에서는 일단 한 무리가 정착해서 경작을 시작하면 농업은저항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농경이 급속한 인구성장의 조건을 만들어준 덕분에, 농부들은 순수한 머릿수의 힘만으로 언제나 수렵채집인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수렵채집인은 자신들의 사냥터를 들판과목초지로 내주고 도망치거나 스스로 쟁기를 잡거나 둘 중 하나를택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어느 쪽이든 과거의 삶의 방식은 끝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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