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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평점 :
<악의 유전학>은 1913년 러시아를 배경으로 고아 500명을 대상으로 '획득 성질 유전된다'는 라마르크의 이론을 실제 인간실험한 내용을 담은 소설이다.
얼핏 보면 어려워 보인다. 처음 책을 읽고자 펼쳤을 때 그리고 목차를 살펴보고, 책 표지에 적힌 VICIOUS(악랄한) GENETICS(유전학) EUGENICS(우생학)의 뜻을 찾아보았을 때, 1913년 러시아라는 낯선 배경을 알았을 때 <악의 유전학>의 첫인상은 어려움과 막연함이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정말 오랜만에 흡입력 좋은 책을 만났다며, 밤새 손에 책을 붙잡고 읽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이론'은 허구의 이론이 아니다. 악의 유전학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라 더 감명 깊다.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이론은 '특정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부모가 노력하여 체득한 특징은 점진적으로 자손에게 유전된다'라는 내용이다.
<악의 유전학>의 줄거리는 1913년, 리센코 후작이 러시아 폐하에게 "추위를 타지 않는 한랭 내성 러시아 백성을 만들어 올리겠다"라며 자금을 지원받고 20년간의 연구를 하게 된다. 후작은 '홀로드나야'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을 만들고 전국에 있는 여아 250명, 남아 250명, 총 500명 고아를 모아 고아원을 운영한다. 다른 고아원과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홀로드나야 마을의 고아원은 한 가지 특이점이 있는데 바로 매일 하는 '입수기도'이다. 매일 어린아이들을 매섭게 추운 물에 입수시켜 버티게 하며 단련했고, 성인이 되어 입수기도 성적이 좋은 고아들을 결혼시켜 아이를 낳게 한다. 그렇게 태어난 갓 돌 지난 아기를 입수기도 시키면서 후작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이론을 실험했다는 내용이다.
소설은 홀로드나야 마을 출신인 어머니 '케케'의 이야기를 인터뷰하는 아들과 오가는 대화를 들여다보는 구조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렵게 느껴지는 낯선 단어들과 이론이 쉽게 이해 갔고, 어머니의 과거 이야기와 함께 아들의 비밀까지 알아가는 재미가 엄청났다. 또한, 매일 차가운 물에 들어가 단련한 사람들의 자손에게 획득형질이 유전될 수 있을까라는 기본적인 호기심을 해소하고 싶어 책을 읽는 속도 역시 빨랐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반전과 놀라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 감동과 여운이 짖게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물음표로 남은 부분들이 많다.
갑자기 나타는 출판사 출신과 '그분께서 저에게 새 이름을 주었어요'라는 부분, 홀로드나야를 나올 때까지도 친절했던 베소가 이후에 무슨 변화가 있었기에 변했는지, 사내는 '제가 세상을 뒤엎을 거예요. 그래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 겁니다'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린 고아들을 대상으로 한 인간실험 내용이라 윤리적인 불편함뿐만 아니라라 폭행, 강제 성교, 매일 죽어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까지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자극적이기에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듯 하지만 나는 재미있게 읽은 책.
비슷한 책으로 옥타비아 버틀러의 <와일드 시드>가 떠올랐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