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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평점 :
동창 모임에 나간 주인공 데쓰로는 어렸을 적 자신과 잤던 여사친 히우라를 만난다. 히우라는 어릴 때부터 성 정체성 혼란을 겪고 지금은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고 전하면서 자신이 여자이지만 남자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어서 히우라는 직장동료를 스토킹 한 남자를 의도치 않게 죽였고, 자수하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보고 싶어 만나러 왔다고 한다. 데쓰로를 포함한 동창 친구들이 개입하면서 히우라의 자수를 막고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소설 '외사랑'은 크게 우정과 사랑 그리고 젠더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사건을 파헤쳐 가면서 동창생들 간의 과거 숨겨졌던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 속에서 각자의 입장과 진실을 보면서 우정과 사랑의 면모에서 볼 수 있고, 두 번째는 젠더 성향의 히우라라는 인물을 기점으로 사회적인 젠더 문제를 범죄와 연결 지어 추리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저명한 저자가 '젠더'라는 이슈를 주제로 선정해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책을 읽으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 크게 자극적이지 않고 거부감 없이 다가온 점이 좋았다. 몸은 여자이지만 마음은 남자인 사람 또는 그 반대, 혹은 상황에 따라 여자이기도 하고 남자이기도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성 정체성을 외면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회가 정한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별 방식과 규칙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소설 속 한 문장을 통해 여성과 남성인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은 다,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고 마음대로 규정하고 자신과의 차이에 괴로워하는 것 같았어요. 남자가 무엇인지, 여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요.(....) 내게는 남녀는 나 이외의 인간이에요. 다들 남자 아니면 여자로 나뉘어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나누는 것에 의미 같은 건 없어요."-268p
700p에 달하는 벽돌 책이지만 저자의 흡입력 있는 필치 덕분에 이번 3일간의 연휴 동안 알차게 읽은 책이다. 사건을 추리해가는 재미가 쏠쏠하고, 동창 친구들 간의 복잡한 관계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보는 재미도 있다. 등장인물이 은근 많아, 일본인 이름 특성상 성과 이름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부르고, 이름이 바뀌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놓치는 부분이 있던 게 아쉽다. 처음부터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적고 짚어가면서 읽어야 할 것 같다. 주인공 데쓰로의 아내 리사코와 기자 친구 하야타는 빌런 역할이 있을 줄 알았는데, 훈훈하게 마무리돼서 아쉽다. 외사랑의 결말엔 반전이랄 게 없었지만 호적교환 아이디어는 정말 좋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너무 많고 유명해서 필자도 꽤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여태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시간 죽이는 오락 소설로 가볍게 느껴졌는데, 이번에 읽은 '외사랑' 만큼은 묵직하게 다가왔고 젠더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꿔놓았다. 필자의 세상은 '여자'와 '남자'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제는 육체와 마음을 분리시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명확하지만 마음은 흰 과 백이 아닌 그러데이션 중 어딘가에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한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