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품절


아트라이터의 그림 에세이

그림을 잘 모르고, 보는 방법도 모르고, 봐도 큰 감흥이 없다. 에세이는 좋아하는데, 그렇다면 그림 에세이라면 내가 그림에 흥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은 책이 바로 <여름의 피부>이다.

저자가 좋아하고 끌려하는 '블루'라는 색을 주제로 한 그림에세이라서 파란 느낌이 드는 그림과 상황들을 담았다. 그래서 목차가 '새파랗게 어렸던, 덜 익은 사람을 담은 <유년>', '모든 것이 푸르게 물들어가는 계절 <여름>', '사람의 몸을 푸르게 변하는 순간 죽음, 병, 멍, 그리고 우울 <우울>', '비밀과 은둔의 침잠의 색 <고독>'로 나뉘는데, 특히 <우울>을 설명하는 문장이 마음에 들어 여러번 읽었다. 블루라는 색의 깊이를 짙게하고 더 나아가 일상 생활에서의 색갈들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특별한 문장으로 다가왔다.

"내게 유년기는 지나간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어떤 장소 같다. 내가 가본 적 있는 혹은 살았던 적 있는, 그러나 꿈처럼 기억은 희미한 곳."-60p

"그림 속 여자는 잠으로 낙하한다. 마치 빗방울처럼. 수면이라는 단어의 '수'라는 글자에는 졸음과 잠 외에도 꽃이 오므려지는 모양이라는 뜻이 있다. 자기 안으로 웅크리고, 동시에 자기를 내던져도 잠의 종착역은 안전하다. 웃기지 않는가. 추락해도 죽지 않는 절벽이라니. 세상에 그런 게 또 있을까? 오직 잠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닌가?"-120p

같은 것을 생각해도 다르게 보는 시각을 가진 저자의 시선을 경험하는 게 좋았다. 유년기 시간을 마치 가본 적 있는 어떤 장소같다는 표현이 멋지다고 생각했고, 나 또한 유년기 시절이 입체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잠을 자는 행위를 추락해도 죽지 않는 절벽이라 표현한 것도 좋았다. 언젠가 감정이 요동칠 때 생각날 것 같은 좋은 문장이라 적어놓았다.

"그렇게 단맛만 가득했던 날은 순식간에 상해버렸다. 내가 H와 더 이상 모험을 함께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결정한 일이었지만 오래도록 생각한 일이기도 헀다. 나는 그의 곁에 있는 나를 좋아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점점 더 좋아졌고 나 자신은 점점 싫어졌다.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면 생기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싶었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64p

친한 언니가 만나던 애인이 있었다. 잘 만나고 있었는데 언니는 상대방을 사랑해서 헤어진다고 했다. 사랑해서 두렵다면서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언니가 당시엔 이해되지 않았는데, 저 문장을 보니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언니의 마음이 곧 저 문장과 닮아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는 한 마리 새처럼 보였다. 놀란 듯한 표정, 물에 몸을 담그기를 좋아하는 취향, 날개 달린 거서럼 사뿐사뿐한 거동..."-90p

아무생각 없이 보고 지나치던 그림을 아름답게 설명하고 또 보이지 않던 사소한 부분을 확대해서 스토리텔링을 해주니 그림이 다르게 보였다. 갤러리에서 사람들이 어째서 한 그림을 오랫동안 쳐다보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림 속 모순들이 보였고, 저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지, 어딘가를 응시하는 피사체들은 왜 저런 표정을 짖고 왜 저곳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림 너머의 공간을 상상하기도 하는 재미를 느꼈다. 그게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20점 정도 되는 그림들이 이 책 속에 등장한다. 그 중에 인상적이 었던 그림은 '루시안 프로이드의 <자고 있는 애너벨>'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의 <빛 속의 여인>'이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책 초반에 등장하는 화가인데, 누드화로 유명하다고 한다. 무척 이기적인 남자로 보이는데 자식들까지도 아버지를 보려면 모델이 되어야 했다고 한다. 누드 모델을 주로 그리는 루시안 프로이드가 옷을 입고 자고 있는 딸의 그림을 그린 작품이 어쩐지 아버지의 감성이 비춰져 인상적이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빛 속의 여인은 그냥 평화로워 보이는 그림으로 보였는데, 저자의 설명을 읽고 보니 작품이 다르게 보여 신기해서 기억에 남는다.

저자의 글은 '의미심장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 구간이 많았지만 긴시간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있어 끝까지 붙잡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동의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기에 나와는 다른 감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의 피부는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을 멋지게 설명해주고, 그림을 보는 재미를 조금이나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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