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최후의 날 1 - 2022년 문학나눔 선정도서 안전가옥 오리지널 15
시아란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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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인류가 사유를 한 시점부터 계속되어왔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 바다를 건너본 사람은 건너 대륙에 대해 이야기를 전한다. 깊은 바닷속을 다녀온 사람은 해저의 이야기를 전하고, 우주에 다녀온 사람은 우주의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저승에 다녀온 사람은 없다. 즉, 그 이야기가 전해진 적이 없으므로 그저 궁금해할 수밖에.

그리고 그런 궁금증은 여러 문학작품으로 탄생한다. 그 근간은 무지에 대한 두려움과 절대자에 대한 동경(혹은 절대자가 있기를 원하는 바람), 그리고 끝(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에 따라 만들어진 종교에 닿아있긴 하다. 물론 전적으로 무신론자인 내 입장에서 보자면, 수많은 종교들에서 전해지는 경전이라는 것은 결국 사후세계를 그려낸 위로의 문학작품이자 산 자들을 조금이라도 옳은 길로 이끌고자 하는 매서운 질타의 문구이다.

이러한 많은 작품들(단순히 경전을 제외하고라도 엄청난 수의 서적, 영화, 드라마 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저승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조금은 상투적이며 지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돋보였던 점은 굳이 참고문헌을 보지 않더라도 상당한 자료조사가 이뤄졌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서술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곳에 (심지어 XXXX에게도, 스포일러라서 비밀로) 저승을 만들어주고, 저승과 이승의 인과관계를 해석한 폭넓은 상상력이었다.

SF로 시작해서 어드벤처로 가더니 휴머니즘으로 끝

1권에서 천문학 박사과정인 호연과 민속학 연구원인 예슬은 지리산에서 폭발하듯 밝은 별빛에 놀라 차를 세웠다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하여 당도한 곳은 시왕저승. 그러나 저승은 우리가 생각하던 옛날 모습을 벗고, 근현대적 관료주의 사회로 변모해있었다. 서서히 절차(이승의 삶에서의 공과를 재판받는 등)를 밟아가려는 순간, 처음 영혼이 도착하는 칼날산에 저승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수많은 영혼이 동시에 도착하게 된다. 한편 호연은 자신이 눈여겨보던 행성이 폭발하여 사람들이 일순간 대거 사망한 것이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고 이를 보고받은 염라대왕 비서실장 이시영은 망자들 중 관련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조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상재 교수 등 이승의 권위에 자신감을 잃은 호연은 흔들리지만 예슬의 도움과 실제 조사를 통해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 이론에 연속되는 또 다른 위기, 즉 이승의 종말에 따른 저승의 최후라는 가설을 주장하는데.

2권에서는 비서실장 이시영과 호연이 다른 저승들을 찾아다니며 그쪽의 상황과 그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이승에서의 신념에 따라 저승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확인한 그들은 한 때 사라졌던 저승이 다시 되살아난 전례를 찾아 발할라로 떠난다. 그 과정에서 여러 다른 저승들을 겪으면서 현 상황에 대한 타개책을 전하고, 유례없는 저승 간의 협력을 추진한다.

3권에서는 아직 이승에 남은 이들의 이야기와 저승의 노력이 닿는다. 호연과 예슬의 이론을 바탕으로 결국 언젠가 다시 지성을 가진 인류 혹은 종족이 나타날 때에 저승 역시 부활할 수 있으리라는 추측을 하고, 저승에서 총망라한 저승의 기록물, 즉 경전을 이승 생존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상에 남기는 작업을 게시한다. 마지막 남은 인류는 종교, 인종, 사상을 넘어 이미 닥친 종말의 장에서 한 줄기 희망 혹은 최후의 역사로써 임무를 완수해낸다.

나 이런 거 좋아해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약간은 내 소설이 부끄러웠다. 당연히 내 글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내 소설은 내 소설 나름의 궤가 있고 세계가 있으며 틀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다름이 아니라 확실하게 느껴지는 작가의 자료조사였다.

난 게으른 편이다. 솔직히 본업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소설을 위한 자료조사를 자유로이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솔직히 글을 위해 자료조사를 하다 보면 주객전도. 끝이 없을 자료 조사의 세계에서 되려 매몰되어 버릴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리하여 내 소설은 최소한의 근거나 논리에 대해 검색을 통해 알아내는 것 외에는 온전히 내 상상으로만 이뤄진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가지지 못한 것에 더 강한 열망을 느끼는 법. 늘 이렇게 방대해 보이는 자료조사를 통해 완성된 소설을 보면 내가 그리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현실의 자료를 반영하여 허구의 세계임에도 사실성이 느껴지는 서사에 부러움이 앞선다. 그만큼 탄탄했다.

신념을 가진 인간의 존재가 신적 세계의 존부에 연관된다는 소재는 앞서 있었긴 하다. 기시감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동양적 저승의 이미지로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적 위기를 당연한 전 저승적 위기(?)로 확대한 것과 그러한 저승 간의 연계와 이승의 협조를 통해 신념을 계승하려는 모습. 그 고군분투 속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초월한 인류애.(이·저승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에는 SF라기보다는 한 편의 휴머니즘 드라마를 읽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중후반부에서 메시지를 쏘아 올리기 위한 기술적 문제 해결과 기록물을 남기는 과정에서의 논의 등은 살짝 독자에게 지루함을 줄 여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디테일한 묘사를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3권에 이르는 소설의 양을 고려했을 때, 독자에게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혹 중간에 삽화를 넣은 배경은 이런 부분을 고려했던 것일까.

그럼에도 3권이라는 분량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한 권을 덮고 나서 다음 권을 집어 드는 것이 의무감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흥미로웠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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