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선량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냉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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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일단 제목을 본 순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뒷면에 실린 내용 역시 남녀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연애소설'이다. 이렇게 돼버리면 작품을 보는 독자가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류작'이지 않나 싶은 의심이다.

하지만 소설 초반에선 책을 덮고 다시 뒷면을 보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약혼녀의 실종과 스토커라니. 범죄소설이었나? 하면서 뒷면을 재확인했다. 그리고는, 제목이 우연히 그리 된 것일 뿐 아류작은 아니구나 하고 안심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책장을 넘길수록, 최소한 '납치는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결국은 약간 오만과 편견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약혼녀에 대해 전혀 몰랐던 과거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매력적인 주인공이 결국은 오만하게 약혼녀를 '선택'했다고 믿었고, 그런 사실을 못 참은 약혼녀, 게다가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는 순진무구한 여자가 증발해버리는 이야기.

절반 정도 읽고 나서는 끝에 가서는 서로의 실수와 오만을 벗어던지고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끝나겠구나라는 상상을 해버렸고, 결국은 또 그렇게 되어버려서 조금은 허무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이야기는 질리더라도 미소를 짓게 되는 이야기다.

대단한 연애

도쿄에서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가케루는 매력적인 남성으로, 한때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지만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 결국 놓치고 만다. 그렇게 마흔 가까이 되어서야 '결혼 활동'이라는, 결혼을 목적으로 한 만남을 추진한다. 하지만 늘 어딘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고, 그렇게 '느낌이 딱 오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미루던 중, 마미를 만나게 된다. '이 정도면'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역시나 결혼을 다짐하지는 못하던 중, 마미의 스토커가 집까지 쳐들어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혼자 두었다는 죄책감에 결혼을 다짐한다.

마미는 지방에서 부모님의 품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란다. 부모님의 비호(?) 아래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본 마미는, 그런 원인을 제공한 부모가 결혼을 못하는 것에 대해 채근하며 주선한 결혼소개소를 통해 '결혼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가케루와 같이 좌절하고, 너무 작아 자신의 모든 것이 주목당하는 듯한 고향을 떠나 도쿄로 가면서 가케루를 만난다.

그렇게 둘이 결혼을 약속한 뒤, 순항을 한다고 믿었던 둘의 '결혼 활동'은 친구들이 마미의 스토커가 가짜라는 사실을 마미에게 이야기하면서 반전을 겪게 된다. 마미는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일어날 일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떠나버리게 되고, 가케루는 갑자기 사라진 마미에 대해 스토킹 범죄를 의심하며 과거를 알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둘 모두는 자신의 오만과 서로의 선량함에 대해 깨닫고, 결국은 서로의 '대단한 연애'를 받아들이고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결혼 활동, 오만한 자들의 향연

전에 남긴 서평(신경진-결혼하지 않는 도시)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흐르듯 변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사랑이라는 허상의 존재 하나로 우리는 계속 서로를 그저 '법적, 제도적' 방식으로 묶어둬야 하는가. 그것은 사랑의 결실인가 혹은 사랑을 미끼로 만든 사회 구조 존속이라는 덫인가.'

우리는 늘 사랑을 갈구한다. 그것이 본능적인 성욕 혹은 종족 보존의 욕구인지, 아니면 사회적 학습에 의한 사회 구조 존속을 위한 세뇌적 요인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궁금하지 않다. 난 사랑하기에 행복하니까. 결과물이 행복하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사랑과 결혼은 과연 동의어인가. 아니면 원인과 결과인가. 혹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애석하게도 '아니오'다.

현대 사회에서 '결혼 활동'이라고 명명된 것이 사랑을 그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이 우리를 오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로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구조적으로 완성된 위치에 있기 위해 하는 행위. 그런 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짝에게도 나와 비슷한 '값'을 원하는 것이다. 내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100의 값을 주는데 상대는 그 정도를 주지 않는다면 '느낌이 오지 않는다'라는 조금은 로맨틱한 이유로 거절하는 것이다. 만약 사랑이 있다면? 내가 100의 값을 주고, 상대는 30만 준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70 이상을 사랑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소설에서 보여지는 마미의 고향 환경이나 '결혼 활동'이라고 불리는 것들, 마미의 복종과 같은 모습은 현대사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게다가 거의 소설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진리'를 단 한 장면에서 모두 쏟아내 버리는 결혼중개소의 오노자토 부인의 모습은 약간 억지스러운 면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일본인이 친구의 약혼녀에게 그렇게 무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약간 일본 정서와 맞는가 싶기도 하다. 마미의 극단적인 선택 역시도 살짝 황당하기는 했다.

거기에 더해 우리나라도 비혼이 이제 특별하고 유별나며 독특한 삶의 방식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사랑'의 힘으로 결혼을 한다. 물론 결혼 후 후회하거나 종국엔 이혼으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작가가 말하는 것과 같은 '결혼 활동'을 흔히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답게만 보기에는 많은 결혼 소개업체가 있고, 실제 그곳을 통해 결혼을 하는 경우도 많기에 이 소설이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과연 그들은 결혼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들은 스스로의 오만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그런 방식이더라도 서로가 스스로의 오만을 깨닫고 상대의 선량함에 감동한다면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테지만, 어디까지나 소설 속 주인공인 둘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중반부터는 어느 정도 결과를 뻔히 보고 읽어 내려가기는 했지만, 일일드라마처럼 약간은 둘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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