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의 인사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8
김서령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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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작가의 말에는 젠더갈등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과도하게 과열된 젠더갈등의 이슈화가 분명 불똥이 되어 책을 불태울 수 있다는 우려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지 않을까.

젠더갈등에 대한 소설이 아님에도, 이를 언급해야만 하는 답답함이 필자의 손가락 역시 멈춰 세운다. 소설에서도 등장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어찌보면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자극적 언론이다. 그리고, 그런 자극에 쉽게 놀아나는 우매한 대중이다.

왜 죽은 자가 산 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위로해야만 하는가. 왜 죽은 자가 집에 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숨겨야 하는가. 왜 피해자의 가족이, 두려워하며 가해자와 합의해야하는가. 과연, 모든 일에는 그 이유가 있기는 한 것인가. 괜시리 마음이 먹먹하다.

숨겨진 이야기, 알 수 없는 이야기 혹은 관심 없는 이야기

늘 뉴스와 매체에서는 연일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무래도 전과 다르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신문 지면으로 제한되어있던 사건 소식이 거의 무한한 양으로 사람들에게 배포된다. 심지어, 무료다. 그러면 사람들은 거기에 다시 자극적인 댓글을 단다. 댓글에는 좋아요가 달리고, 남들이 좋아요를 단 댓글에 또 누군가 편승하여 좋아요를 누른다.

어떤 사건에 어떤 이면이 있는지 우리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한수정은 재혼가정에서 자라 은행원으로써 동생 수민과 성 다른 동생 윤지와 함께 별 탈 없이 자란 밝은 사람이다. 노란 빛이 나는 금붙이가 덕지덕지 붙은 철규를 만나기 전까지는. 떡볶이 가게 사장인 철규의 '순정'은 비극으로 마무리 되고, 수정이 없이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정이 담담한 어조로 가만히 안아준다.

소설 중반까지의 이야기는 사건의 전을, 그 이후는 사건의 뒷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마, 소설의 전반부에 걸쳐 놓여 있는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혹은 알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것이다. 너무나 평범해서, 너무나 잔잔해서 따듯한 이야기.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 삶과 가까운 이야기.

수정이 겪는 사건은, 우리가 익히 뉴스에서 봤을 법한 이야기다. 뉴스에서 연일, 아침뉴스에서, 정오뉴스에서, 9시 뉴스에서, 그리고 이어서 다음날 조간까지. 전 연인을 쫓아가 도륙한 이야기나, 죽인 시체를 트렁크에 싣고 전국을 도망다닌 이야기나, 스토킹을 하다 여자와 동생, 그 어머니까지 살해한 이야기. 너무 섬찟하고 슬프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평범한 일상에 '자극'으로만 받아 들이는 이야기.

그리고 언론은 사건의 잔혹함에 집중하다가 사람들의 흥미가 떨어질 것 같으면 어느새 곡해와 왜곡과 비약을 가미해서 이 세상에는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사건과 무관한 인간들은 오로지 소란이 싫어서 혹은 떠나보내는 것이 마음에 담아두는 것보다 쉬워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덮으려고만 한다. 그렇게 피해자의 시신이 부패하기도 전에 그렇게 진실을 변질시켜버린다.

인간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그 뒷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하지 않는다. 변질된 이야기가 진실인지에 대한 관심은 어디에도 없다. 불길이 사그라든 뉴스에 언론은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고, 언론에서 떠들지 않는 이야기에 대중은 관심을 끈다. 남은 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떻게 버티는지, 어떻게 보내주었고, 어떻게 떠나갔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랬다. 유족에 대한 관심은, 오롯이 죽은 자에게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겨진 사람의 슬픔에 대한 책임

수정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남은 사람들은 마음에 두고라도 억지 인사를 보낼 수 있다. 수정은 작가의 글을 빌어 그나마 남은 사람들을 담담히 살피고, 조용히 마음을 전할 수 있었지만, 현실의 피해자들은 가해자만 들을 수 있는 외마디 비명을 마지막으로 잊혀질 수 밖에 없다.

필자도 갖가지 말로 할 수 없는 범죄들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분노에 치를 떤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다고 외면하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안도하기도 한다. 내 주변에는 저런 일이 생기지 않을거라 안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평범할 수 있는 것은, 담담하게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디선가 다른 이가 '슬픈 일'을 대신 당해주어서 인지도 모른다.

여성으로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 누구라도 당할 수 있을 일을 내가 당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 사람들에게 나 없이 이 세상에 남겨질 슬픔을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당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나를 누군가가 대신해 주었기에 그런 것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남겨진 그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 우리가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공동책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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