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iller's Wife 킬러스 와이프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 1
빅터 메토스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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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범죄 소설의 묘미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차적으로 먼 과거부터 이어온,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만고불면의 진리, '권선징악'.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천재로 태어난 사이코패스들이 인명을 우습게 여기며 살해하지만 결국은 정의감과 끈질긴 집념으로 검거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오는 정의 실현에 대한 희망. 이차적으로는 권선징악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이야기에서 한 발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 그 어떤 범죄라도 결국은 법 앞에 처벌될 것이라는 안전함에 대한 욕구. 마지막으로는 그러한 범죄자의 말로를 보는 선량한 시민으로써의 쾌감.

하지만 꽤나 법에 근거리에서 일을 하는 직업인 필자 역시도 오랫동안 간과한 사실이 있으니, 경찰이나 형사 혹은 탐정이 연쇄살인범을 잡아 유치장에 쳐 넣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치장에 잡아 넣고 나서야 제대로된 법의 심판이 시작된다. 가끔은 그 법의 굴레라는 것은 우리의 정의감과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버린다.

마치, '그 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이 그 어떤 현실감도 없는, 오로지 그 뒤로 지금까지 한 이야기보다 갑절은 더 길고 지루한 '현실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간결하고 긍정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접대성 멘트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가 간과하듯이.

식상 + 식상 = 다채로움

만약 매일 같은 요일에는 같은 반찬만 먹는다면? 그 얼마나 지겨운가. 하지만 그 모든 요일의 모든 반찬이 한 번에 나온다면? 상다리가 휘지는 않을지라도 밥상을 받는 사람은 먹기도 전에 포만감에 젖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일단 감탄한 것은, 탄탄한 서술력이었다. 최근 번역소설들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바이기도 하다. 물론, 해당 국가에서 어느 정도 시장성을 인정한 소설을 가져오는 만큼, 어찌보면 소설 자체에 대한 완성도는 괜시리 의심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혹은, 번역작가가 워낙에 뛰어나서 원서의 내용보다 충실한 글을 재창조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보여준 탄탄한 서술력과 문장력, 구성력은 단연 돋보였다. 작가가 변호사이기 때문일까. 일견 합당한 추측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게다가 이러한 탄탄함을 토대로, 작가는 식상한 두 개의 서사를 이어붙여서 전혀 새로운 시각의 소설을 완성했다. 필자가 아무래도 범인이지 않을까 의심했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진 순간, 가장 놀랜 것은 그가 범인이라서가 아니라, 책의 페이지가 절반정도밖에 펼쳐지지 않아서였다. 그때까지만해도 대체 이런 식의 전개로 후반부를 어떻게 이어가려는건지 우려스러웠다. 지금까지의 탄탄함을 배반하고, 억지스러운 반전을 끼워넣거나 말도 안되는 설정으로 범인을 풀어보면서 액션물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우려는 몇 페이지 더 넘기지 않아 일소되었다. 그저 범죄물로만 생각했던 소설이 중반부를 넘어서자, 어느새 법정스릴러물로 변해있었다. 범죄물에서 법정물이라니. 이 얼마나 매끄러운 흐름인가!

위에 언급했지만, 우리는 약간 해피엔딩이라던지 징악이 이뤄진 후의 일에 대해서는 그닥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일반화되어 있는 현 시대는 또한, 법치주의가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그저 경찰에 잡히면 끝이라거나 범인을 주인공이 쏴죽인다거나하는, 약간 '그 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식의 종결로 편하게 마무리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 성향을 철저히 깨부순 소설이 이 소설이지 않을까. 항상 뭔가 빈약한 종결에 목말랐던 독자라면, 이번에는 시원시원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나무랄 것 없는, 완성도 높은 범죄소설이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야들리 정도 되는 여성의 사랑이 너무 무조건적이었다는 것이랄까. 게다가 한 번 그러한 상처를 겪은, 연방검사라는 여자가 어린 자녀까지 있음에도 그런 선택을 한 것은 그저 외로움이라는 단어로는 조금은 허술하다. 그리고 소설 전반에 등장함에도 상대적으로 볼드윈에 대한 서술이 조금 약했다. 물론 분량이나 흐름상 매우 주요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충분히 전면에 내세워서 독자에게 약간의 혼동 정도는 줄 수 있었을 인물이 아니었다 싶다. 그리고 가장 아쉬운 점은 부제인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이런 류의 제목은 쓰지 않았지 않나...

하지만 앞서 말했듯, 탄탄한 문장력과 탁월한 소재는 소설을 읽는 내내 필자에게 꽤 높은 집중력을 선사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범죄 수사 현장과 자신의 과거와 이어진 현재의 사건 때문에 잊고 싶은 과거와 대면해야하는 주인공의 내면. 과거의 끝에 닿아있는 딸에 대한 주인공 야들리의 고뇌. 그리고 온갖 역경에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주인공의 각오.

법정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범죄소설, 특히 그 끝인 법정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풀어낸 범죄소설에 가깝다. 게다가 그 배경에 주인공 야들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은은한 내면 표현들을 읽고 있자면, 약간은 휴먼드라마가 가미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히나 이런 부분이 앞서 말했든 식상할 수 있는 조합, '사이코패스+그 사이코패스를 흠모하는 다른 사이코패스+사이코패스를 사랑했던 여자 검사+여자 검사의 자녀+여자 검사를 흠모하는 다른 동료'라는 조합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약간 피해자의 복수로 치장될 범죄소설은, 중반부에 파격적으로 범인에 대한 별다른 반전없이 체포시키고나서는 법정스릴러로 변신을 꾀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신에, 구시대적 조직에 대한 주인공의 반항과 흔히 말하는 '꼰대'상관의 실패가 합쳐지면서 1차적 쾌감을. 법의 구멍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범인을, 특유의 재치와 자신의 상황을 역이용해 붙잡는 야들리의 모습에서 2차적 쾌감을 느끼게된다.

하지만, 독자는 2차적 쾌감에서 방심하면 안 될 것이다. 방심했다간 작가에게 3차적 쾌감을 주는 희생양이 될테니까.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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