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언의 정원
애비 왁스먼 지음, 이한이 옮김 / 리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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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떠나간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한 없이 그리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가히 탄생과 소멸의 그것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은 '죽은 제갈공명이 산 조조를 내쫓았다.'라는 삼국지의 문구다. 비유로 매우 부적절하지만, 반면 얼마나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거대한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그런 죽음의 영향은 다행스럽게도 산 자의 변화로운 삶에 대해 반응하며 그 영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늘 그렇게 고정되어진 슬픔이나 상처. 늘 그렇다. 그 무엇이든 그대로 멈춰있는 것들은 인간들이 정복해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상처들. 슬픔들. 그것들 역시 그렇게, 정복되어질 것 아니겠는가.

슬픔의 정복

서두에 말했지만, 얼핏 혹자는 필자가 '정복'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 대해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다. '살아가며 아직 소중한 이를 잃어본 적이 없는 자의 오만스러움'. 일견 맞는 말이다. 아직 필자의 부모님 모두 생존해 계시며, 배우자 역시 잘 살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다. 하지만, 필자의 장점 중에 하나는 현 시점에서 미래의 비극적 시점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모두를 잃는다. 심지어 본인이 죽음에 이르는 경우에는, 한번에 모두를 잃는 것과 진배없다. 본인이 죽는다면, 적어도 '남겨진 슬픔'은 겪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안도한다면. 그렇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자들이라면 매우 큰 오산에 빠진 것이다. 최소한 그들은 남겨진 슬픔은 없을지 모르겠으나, 한 순간에 소중한 모든 이들을 잃어버리는 슬픔과 고통을 맞아야할 것이다.

내가 늘 우는 지인들을 위로할 때 하는 말은, 울고 싶은만큼 울어라는 것이다. 그것은 감정의 분출이고 슬픔의 표현이다. 그 어떤 감정이든 마음 안에 쌓이면 썩는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이 썩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가장 큰 문제는 지나간 아픔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그'를 떠나보내고 함께 곁에 남아 있는 '같이 남겨진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왜 필자는 '정복'이라는 단어를 썼는가. 그것은 싸움이자 전투이며 각축이기 때문이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모두 내게서 나온 나의 소중한 감정이다. 하지만 소중한 이를 잃은 강렬한 슬픔에 다른 감정들이 죽어버리면 안된다. 우리는 그러한 슬픔과 싸워 이겨내야 한다. 길가에 파는 솜사탕의 달콤한이나, 좋아하는 코미디 프로를 보고 내짖는 박장대소, 시험 문제를 풀고 나서 아깝게 틀린 문제에 대한 아쉬움따위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그런 감정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싸워야 하고, 정복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그저 나와 함께, 내 곁에, 남겨진 슬픔을 온당히 감내하고 있는 '나의 사람들' 때문이다.

결국에 남는 것

필자가 즐겨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포레스트북스의 포스팅을 보면 인상적인 댓글을 캡쳐해둔 이미지가 있다. '슬픔은 거대한 바위가 되어 몸을 짓누르다가, 점점 작아지고, 끝내 주머니에 넣을만큼 작아져서 나중에는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마다 생각이 떠오르는데. 평생 그 돌멩이를 갖고 다녀야한다.'

필자는 슬픔이 갈수록 작아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하지만 과연 평생을 갖고 다녀야하는가. 왜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인 망각의 존재를 부정하는가. 애도의 기간은 '그'를 잊기 전까지면 충분하다. 그를 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신이 준 선물이다. 잊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은 망각의 잔상일 뿐이다. 아직 못 잊은 것이 아니다. 죄책감을 놓아주자.

결국, 우리 인간의 삶에 마지막에 남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명심하자. 우리가 먼저 떠나보냈다고 하더라도. 그 슬픔에 매몰되지 말자. 우리의 삶에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닌, 또 다른,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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