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체스트넛맨
쇠렌 스바이스트루프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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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살인자를 미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가. 우리는 갖가지 사건들의 추악한 범죄자들의 재판 결과에서 수없이 광분한다. 그가 살아온 삶이 불우해서, 혹은 학대를 당해서, 정상적인 교육을 다 받지 못해서. 이런 저런 사유들로 그의 형량이 감형되는 것을 본 일반인들은 의아함을 느끼다가 분노를 느끼고는 이내 '법적으로' 그런거겠지라며 체념한다. 사실, 우리가 분노해봤자 그들의 관념에서 바라본 범죄자에 내려질 벌은 정당할 것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늘 생각한다. 나라고 그렇게 풍족하고 유복하며 행복한 유년을 보냈는가. 어디 하나 고민없고 해맑아서 세상의 밝은 면만 보고 자라왔는가. 그렇다고, 내가 그러한 범죄자가 되었는가. 단순히 그의 삶 어느 한 부분이 어두웠다고 해서 그의 범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헤스의 말은 적절하다. '너는 태생적으로 싸이코패스였을지도 모르니까.'

위탁가정의 그림자, 아동학대와 성범죄. 그리고 싸이코패스.

필자가 여러차례 서평을 적으면서 느끼는 것은 소재의 고갈이다. 앞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단적인 예로 늘 음악을 든다. 좁게 봤을 때, '도레미파솔라시'라는 7개의 음계로만 만들어지는 음악이 몇 백년 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쉼표라던지, 음표의 종류라던지 많은 변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좁게 본다면 이미 가능한 확률의 모든 창작은 이뤄졌을 확률이 높고, 결국은 '표절'이란 원작자의 기분이 나쁜지의 문제이거나 아직 살아 있거나, 유족이 저작권료를 받고 있는지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싸이코패스의 범죄자가 등장하는 소설은 상투적일 수 밖에 없다. 싸이코패스의 연쇄살인과 유능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형사. 유능하지만 일련의 개인적 문제로 인해서 조직에서 따돌림당하는 형사. 그리고 과거의 치적을 그대로 덮어두려는 상급자. 막상 이렇게 이 소설의 등장인물만 나열해두고 보자면 기시감이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채택된 이유는 책을 읽는 내내 필자의 미약한 촉을 건들인다. 범죄소설의 묘미는 소설 속의 '천재적인' 수사력을 가진 형사들보다 더 넓은 시각(소설적 기법으로 인해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시간의 역행이나 장소의 이동, 사건의 동시 인식 등)으로 사건을 보면서 먼저 범인을 색출하거나, 실마리를 잡는데 있다고 하겠다. 비약하면, 혹자들은 소설 속에서는 천재'나' 되는 형사가 독자가 보기에는 미련퉁이처럼 보이는 것을 즐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늘, 작가는 독자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 소설은 양파처럼, 그 진실을 맨 안에 숨긴 체 수십 페이지의 껍질로 숨겨둔 작가의 깜짝선물이다. 아무리 상투적인 소설이라도 독자가 한 눈에 범인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울 뿐더러 작가는 일부러 '이 놈이 범인이다!'라며 손가락질을 하며 발끝으로는 실마리를 저 멀리 툭툭 밀어 차 놓고는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범인은 꽤나 잘 감춰두었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필자가 손에 꼽았던 두 사람의 범인이 사건과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경찰이란 직업을 택하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아마 다른 독자들도 그렇지 않을까.

넷플릭스의 선택

개인적으로 믿고보는 넷플릭스다. (홍보나 광고가 아니다.) 다른 OTT 서비스를 이용한 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필자의 취향에 딱 맞다. 가끔 제3국(혹은 거의 4국)의 작품을 영상화하는 것이나,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을 서비스하는 것도 좋다. 특히 넷플릭스의 기조가 상당부분 인간 본연의 공포나 욕망 등에 기인한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그런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시리즈물의 원작으로 선택했다는 점부터 어느정도 필자의 취향은 저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개인적으로 소설 원작의 영상화된 작품을 먼저 본 경우에는 소설을 읽는 것이 매우 싫어지는데, 소설을 먼저 접한 것이 다행스럽다.

특히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작가가 범인을 잘 감춰두었다. 이는 단순히 독자가 '절대' 범인이 누군지 다 읽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게 해두었다는 점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범인이 밝혀진 후에 독자가 당연히 이 사람이 범인이어야했거나, 범인이라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으면서 범인의 범행에 논리적으로 허점이 없는 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가끔 서평을 하다보면 기시감에 이미 범인을 인지한 채로, '설마 이 사람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책을 읽는데 집중하지 못할 소설도 있다. 혹은 '엥? 왜 갑자기?'라는 생각으로 책을 다 읽고 나서 괜히 읽었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 때도 있다. 추리소설에서 범인을 '잘' 감추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어려운 일을 매우 잘해내었다.

이제 넷플릭스를 켜야겠다. 배우들에게 미안하게도, 이미 내용을 아는 입장인만큼, 주요 감상 포인트는 범인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이겠지만.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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